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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욱 Jul 03. 2019

자아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난 일기] 2018년 6월 14일의 일기

[지난 일기] 2018년 6월 14일의 일기


자아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처음 맞는 오늘 밤, 처음 맞는 스물아홉, 처음 맞는 회사에서의 380일... 사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우리의 처음이죠.


모든 게 처음인 세상에서 제 자아가 단단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조금 우스운 일일 수도 있어요.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능숙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제가 바라는 단단한 자아는 매일 처음을 맞이하면서도 꿋꿋하게 잘 버텨내는 저를 사랑하는 일이고, 어떠한 처음을 맞이해도 반가워할 줄 아는 여유예요. 그리고 그런 저를 자랑스러워할 줄 아는 삶이죠.


'날씨'가 주제였던 어제 전시에서 마주한 저 사진 한 장은 그래서 슬펐죠. 지금의 내 자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길목에 덩그러니 놓인 집. 저 많은 창문에 불은 단 하나. 어쩐지 외롭고 을씨년스러웠어요. 문을 열면 저를 반기고 토닥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진 속 저 집은... 방금 지친 하루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간 누군가가 터벅터벅 스위치를 향해 걷고 힘없이 불을 켜 카우치에 털썩 주저앉은 아주 고요하고 외로운 집처럼 보였거든요.


아, 작품 자체가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연상한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았단 거지. 어쨌든 전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보단 저를 둘러싼 관계를 연상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 아직 나는 나 자신보다 누군가의 OOO이 익숙한 사람이구나.’,

'아, 나는 '혼자'라는 걸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저 작품 속 날씨와 계절은 어떤 계절일까 생각해봤어요.


지금 제가 보는 작품 속 날씨와 계절은 아직 음습하고 축축한 늦가을 어느 슬픈 밤이겠지만, 제 자아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면 분명 다른 모습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같은 사진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제게 저 사진 속 계절이 생명력 가득한 봄이거나 적어도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아주 늦은 겨울의 끝자락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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