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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욱 Jul 02. 2019

사랑하는 아들에게

[지난 일기] 2019년 01월 04일의 일기

[지난 일기] 2019년 01월 04일의 일기


사랑하는 아들에게


십 수년 전, 출장 중인 아버지는 뮌헨에서 내게 엽서를 보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로 시작한 그 엽서에 딱히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내게 뮌헨이 의미 있는 도시라는 이야기, 당당하고 씩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 그 밖에 아버지 나름의 멋쩍은 사랑 표현이 담긴 엽서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은 엽서 속 아버지가 이야기했듯 ‘너도 언젠가 이 곳에 오게 될 날’을 맞았다.


어제는 아우구스티너 켈러에서 독일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다하우 수용소를 돌아보고 (아쉽게도 님펜부르크 궁전은 가지 못했지만) 카를 플라츠를 지나 마리엔 플라츠까지 걸었다. 신 시청사 전망대에 올라 뮌헨의 야경을 눈에 담고 분주하게 발을 굴려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까지 보았다.


하루 종일 뮌헨을 걸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과연 아버지는 십 수년 전, 뮌헨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내게 엽서를 적으셨던 걸까?’ 하는 의문이었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늘 나는 다하우 수용소를 둘러보면서 동생과 함께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모습을 떠올렸고 마리엔 플라츠를 걸을 때에 어머니 손을 잡고 산책하는 상상을 했다. 평소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나다니는 일을 즐거워하던 나지만, 왠지 특별한 장소에서 소중한 경험을 한 오늘은 유난히 가족들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아마 나처럼 뮌헨에서 보고 느낀 이 소중한 경험들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었을 테다.


딱히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던 그 엽서에 아주 특별한 마음이 담겼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새삼스레 알게 되는 하루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마음으로 이어진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립'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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