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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02. 2017

우리가 환호하는 B급, 킹스맨

소수의 B급 같은 만인의 A++급


매튜 본의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sman : the Secret Service, 2015)>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이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칠 줄 몰랐을 것이다. <킹스맨: 골든 서클 (Kingsman : the Golden Circle)>이 개봉을 앞둔 지금, 영화 포털의 설명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처음 <킹스맨>이 나왔을 땐 이 영화가 시리즈물로 제작될 줄 몰랐다. 그리고 후속편의 줄거리 - “킹스맨 본부가 파괴되고, 멤버들은 미국의 스테이츠맨(!)과 협력해 악당 소탕에 나선다”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베테랑 스파이 아버지를 둔 문제아 아들이 우연히 자신의 적성을 찾고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는 봉건시대적 "금수저"선민의식을 닮은, 전래동화에서 수십 번 볼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면, 예컨대 전편에 비해 줄거리가 좀 더 세련되거나 복잡해질 필요가 있는 건지 되묻는다면, 오히려 나아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대답하겠다.


 


나쁜 손을 자랑하는 문제아 청년 ‘엑시(태론 에저튼)’의 앞길은 뻔해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 ‘해리(콜린 퍼스)’는 그를 뜬금없이 비밀정부기구의 정예요원으로 추천하고, 청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나간다. 진부한 이야기는 감독의 센스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우스꽝스러우나 흥미진진하고 엽기적으로 세련된 볼거리로 탈바꿈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든지,  남보다 뛰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뛰어난 게 문제라는 식의 말을 전혀 느끼하지 않게 날릴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 (허공에 떠 있던 제임스 본드를 살아있는 피, 땀, 눈물로 끌어내린 다니엘 크레이그 정도라면 모를까). 유래 없는 형태의 악당을 연기한 사무엘 L. 존슨, 평범함의 매력을 자랑하는 테론 에저튼, 영국/아일랜드 배우의 대부로 자기 캐릭터를 스스로 비틀어버린 마이클 케인과 마크 스트롱 덕분에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매끈한 비주얼과 오디오를 자랑한다. 소피아 부텔라의 칼발은 화룡점정이다. 영화를 슥삭슥삭 솜씨 좋게 갖고 노는 정육점 주인, 감독 매튜 본의 분신 같다.



그러나 <킹스맨>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소위 하드고어/컬트/호러 영화로 분류되는 B급 영화의 정서를 손상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A(++)급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흔한 영웅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기괴하고, 좀비 영화의 변용체라기엔 겁나게 절묘하다. 과거 숀 코너리나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에게는 오직 A급 남자인 그가 빛나기 위해 마련된 시공간이 있었다. 악당을 두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악당은 그에게 반격을 날리지 않았다. 반대로 그가 악당에게 붙잡힌 경우엔 악당은 총구를 들이민 채 허송세월하다가 그를 보내줘 버렸다. “하지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사무엘 L. 존슨은 자유롭게 킹스맨을 농락하고 관객의 기대를 수시로 배반한다. 콜린 퍼스는 한끗 더 멋있을 수 있는 기회, 고귀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자신을 웃음의 제물로 바친다. B급 영화의 천성, 관객의 기대를 배반함으로서 그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과 공포와 즐거움을 안겨주는 미덕을 <킹스맨>은 고스란히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데, 게다가 이 영화는 소수가 전용하는 B급이 아니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고 가야 할 곳에서는 달려나가는 균형감각을 가진, 다수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유머로 가득찬 A급 영화다. 교회 장면의 액션은 숨가쁠 정도로 세련되어, 촘촘하게 설계된 맨투맨 액션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피 대신 폭죽을 사용한 “반짝반짝” 장면의 기발함과 아름다움은 단어 그대로 전무후무하다.매튜 본의 <킹스맨>은 이미 모든 말들이 전형을 갖춘 체스판 위에서, 빡빡한 규칙을 비틀어버리는 절묘한 감각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줄거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틈새를 찾아 빠져나간다. 이번 <골든서클>에서도, 이변이 없다면, 매튜 본이 이미 <킥애스>나 <스타더스트>에서 보여주었던 센스가 빛나리라 생각한다. B급을 가장한 A++급의 독보적 매력을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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