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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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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15. 2019

나를 괴롭히는 간극에 대하여

말 잘 하는 사람과 말 못 하는 사람의 연애


생각하는 것의 반만 말하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것의 반의반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문장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생각하는 것의 반의반도 말하지 못하는 눌변이다. 이런 내가 어릴 적에 엄마는 변호사가 될 거라고, 외교관이 될 거라고 상상했었다니 아마 엄마도 외국어 구사력과 자기표현력, 글을 쓰는 능력과 말을 하는 능력을 구분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수가 적었다. 말보다는 글을 좋아했고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했다.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고역이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내내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걸까 의심하고 자책한다. 그래서 누구와 잘 다투지도 않는다. 평화주의자라서가 아니다. 나의 전투적인 면모는 늘 다른 식으로 발현된다. 예컨대 고객센터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가족 중 나의 몫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관계를 단절했다. 달아나는 것이다. 물론 연애를 할 때에도 나는 싸우지 않았고, 그냥 어느 순간에 소리없는 끝이 오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런 허약한 근성은 어이없게도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라고 짐작한다. 몸이 약해서 몇 번 크게 앓았다. 또 우울증과 식이장애 때문에 열다섯 살 때, 스물다섯 살 때엔 특히 일을 치렀다. 지금도 만성적인 병들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몇 가지 유예와 특권을 누렸다. 조례시간이나 체육시간엔 양호실에 있었다. 일을 하다가 포기해도 누구든 "쟤는 몸이 약하니까"라고 했지 "쟨 근성이 없어서 안 되겠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일, 기울이고 싶은 일과 그러고 싶지 않은 일을 분리했다. 연애 중 다투는 것은 당연히 후자였다. 어차피 불만을 얘기해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싸움이 될 뿐이지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여겼다. 큰소리가 나는 게 싫어서, 쓸데없이 다투기 싫어서 누구나 다 꺼린다는 대답도 자주 했다 - 무슨 음식이든 괜찮아, 뭘 먹어도 상관없어, 어디에 가도 괜찮아, 그렇게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이별이 있었다. 나는 연락을 끊었고 핸드폰을 바꾸었고 언제에는 이사도 했다 기본적으로 나의 연애는 길지 않았고, 몹시 짧았다.


두 해가 넘는 기간 동안 둘이서 많은 커피를 마셨다, 이렇게 다르게


두 해가 넘는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예전보다 더 나이가 들었고 더 기진맥진해졌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정말로 무슨 일에도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고 당연히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음식이 맛있는 가게도, 분위기가 좋은 카페도 많이 알았다. 더 많은 여자를 만났고 더 오래 일했으며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더 많은 사회경험을 쌓았다. 나는 그저 그보다 더 많은 여행을 했고 더 많은 영화를 봤고 더 많은 책을 읽은 덕분에 잡다한 생각만 많아진 사람이었다. 그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무뚝뚝해도 배려심이 많아서 크게 다툴 일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고 단정지을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이미 많이 닳아 있었고 버티는 법을 알았다. 친구가 많은 그가 밤에 술을 자주 마시러 나간다고 해도 나는 콧방귀 한 번 뀐 적 없었다. 그는 나의 다양한 기행들, 혼자 불쑥 외국에 가버린다든지 하는 일들을 참아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고기를 좋아하고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그는 케이크도 초콜릿도 먹지 않지만 나는 단 것이라면 뭐든 먹는다. 그는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나는 라떼만 마신다. 나는 소소한 선물을 좋아하고 그는 그렇지 않다. 그는 식성이 좋은 반면 나는 편식이 심하다. 그는 클럽과 술집과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나는 영화와 여행과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린애 같은 스킨십을 좋아하고 그는 별스럽다며 싫어한다. 그는 꼼꼼하고 나는 허섭하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그는 혼자 사는 생활을 즐긴다. 나는 추위에 약하고 그는 더위에 약하다. 그는 자기가 남자의 전형이라고 말하고 나는 내가 전형적인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괜찮았다. 진짜 별 것 아니었다. 대신 먹고 마시고 자는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차이가 있었다. 그는 말을 잘 했고 나는 말을 못 했다. 그는 언어의 사람이었고 나는 생각의 사람이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무슨 말이든 더 잘 했다. 생각한 것은 곧장 말하고 그것을 자주 잊어버렸다(또는 다시 회고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그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뜬금없는 때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가 기겁하고 싫어할 만 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상세하고 쓸모없는 것들까지 기억하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엄마는 내 기억력이 끔찍하게 좋다고 자주 말했는데 칭찬이 아니었다(이것도 사실은 어떤 증상의 일부라고 했다). 덕분에 나를 괴롭히는 순간들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전투하지 않고 대응하지 않고 항거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러나 명백하게 내가 그의 노련함 때문에, 무심함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 순간들은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다. 나는 멍청하게도 어쩌다 한번 생일에, 크리스마스에, 발렌타인 데이에, 설날과 추석에 축하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런 순간을 꺼내든다. 그때 난 상처를 받았다는 말에 그는 어이가 없어지며 나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내가 그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어떻게 잊겠는가. 떠올리고 곱씹으면서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언젠가 연습장 세 장이 넘는 편지를 쓴 적도 있었지만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점심메뉴를 정하지 못해 미적미적거리는 나를 두고 그가 걸어갔을 때, “왜 그렇게 밍그적거렸어, 짜증났잖아”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 여행지에서 술을 마시다 “우리가 과연 잘 맞는 건지 모르겠어, 끝이 어떻게 나겠어?”라고 물었을 때, 다른 날 저녁을 먹다가 “사실 그때 너와 헤어지려고 했었어, 너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라고 말했을 때, 또 같이 시무룩하게 저녁을 먹다가 “기분이 너무 안 좋아, 우리가 맞는 걸까?”라고 다시 물었을 때 , 그가 나와 헤어지려고 했던 바로 그 시절 길거리에서 갑자기 한밤중에 집으로 술친구들이 온다면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를 지하철역으로 보냈던 때. 물론 이보다 훨씬 사소한 순간 역시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던 그 표정, 다음날 아침 “난 밥먹을 때 핸드폰 하는 게 싫어”라고 하던 말투,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 "왜 우는 거야, 난 여자가 우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던 얼굴. 난 가슴이 작다는 말을 들어도, 못생겨보인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다만 내가 끌어안을 때 그가 밀어내는 건 정말 싫다. 짜증스럽다. 마음을 다친다. 그럴 때의 얼굴, 얼굴들. 미운 얼굴들.




선물을 주면서 왜 나쁜 말을 해, 왜 제 살 깎아먹는 짓을 해, 그렇게 둘이 안 맞는데 왜 안 헤어져, 왜 그냥 있어, 왜, 왜. 그러면 나는 헤어지는 과정이 이미 너무 지난하고 괴로워서, 라고 내 자신에게 대답한다. 사실 나는 그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담아둘 뿐만 아니라, 결심을 한다. 도망칠 생각을 한다. 외국으로 나갈 생각, 핸드폰을 바꿀 생각, 연락을 끊고 사라질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두 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예 만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비겁하고, 그러나 여태껏 늘 의외의 행동력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게서 도망쳤는지 안다면 그는 마찬가지로 엄청 놀랄 것이다. 그는 어제도 나에게, 대체 내게 그렇게 불만이 많아서 어떻게 하니, 쌓아두지 말고 말을 해, 라고 했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주면서 또 잘못된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에 나는 분해서, 억울해서, 두 해가 부질없게 느껴져서 엉엉 울었다. 옆집에 들리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로 크게 소리내서 울었다. 만약 내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면, 불만이 있을 때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면 더 나았을까. 사실은 그것도 모르겠다. 말을 잘 하는 사람과 말을 못 하는 사람의 간극이 이리도 멀다. 이것은 연애라고 하기에는 너무 괴롭고 너무 멍청하고 너무 소모적이다. 왜 나는 이렇게 벙어리인 것일까? 그가 결심하지 않는다면 내가 결국 도망가지 않을까, 하고 나는 정말로, 세계지도의 다른 장소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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