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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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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r 07. 2019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


어느덧 이 년 반을 넘게 만났지만 그는 아직 아무에게도 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의 친구에게도, 선배와 후배에게도, 그 많은 모임의 사람들에게도, 한떄는 나와 그가 함께 다녔던 회사의 동료들에게도. 아무 상관 없다. 나는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동생을 제외한 대부분이다, 심지어 엄마와 아빠를 만나는 것도 힘들어한다)을 만나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괴롭다 못해 싫어한다. 단지 나를 괴롭게 하는 것, 화나게 하는 것, 여러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의 비일관성이다. 나는 내가 한결같은 투명인간이기를 원하지(또는 한결같은 불투명인간이기를 원하지), 그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내 명도와 채도를 조절"당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자신에게 놀라움을 느끼면서 나는 그의 부모님과 식사도 했고, 누나도 만났고, 부모님과 식사도 했고, 부모님과 식사도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밥 먹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그래서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어지간하면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리는지) 그는 잘 모르는 것이다. 아니, 전혀 모르는 것이다. 단지 그는 내가 입이 까다롭고 짧으며 편식이 심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나 혼자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배고픈 공룡처럼 모자란 에너지를 쓸어담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이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하루빨리 결혼하라고, 정말이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면 나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 어르신을, 그것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생면부지의 관계에 있었고 계속 그럴 수도 있었던 어르신을 어쩔 수 없이 원망하게 되고 그의 아들을 미워하게 된다. 너 나이가 많잖니, 라고 말씀하시는 분 앞에서 당신의 아들은 나보다 열 살 많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게다가 나는 몹시 어리다, 비록 여러 이유로 몸과 마음이 마모되어 늙긴 했지만 나이는 어리다). 네 어머니에게 빨리 소개드려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 앞에서 당신의 아들이 그걸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저에게 이러시지 말고 아들에게 말씀하시라고 정직하고 냉혹하게 말할 수 없다, 절대로. 왜냐면 나는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고,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아들이 언제 무엇을 빌미로 나를 떠나갈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혹은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 혹은 적어도 내가 원하며 또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정도와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단도직입적으로 단순하게 대놓고 적나라하게 보건대,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귀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다른 여자 친구들이나 선배와 후배들이나 회사 동료들이나 이래저래 그가 아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좋아하겠지만 예전 그가 사귀었던 연인들, 애인들, 여자친구들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예전 결혼을 약속했다가 파혼하게 된 여자친구 얘기도 해 주었고 아직까지 그의 반지도 가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내가 그의 부모님을 만난 것은, 그가 잔소리를 피하기 위한 면피로 날 끌여들였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 이하로도 그 이상으로도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결혼할지 결혼하지 않을지 모르고 또 관심 밖이지만, 그가 어쨌든 나와는, 아주 극심한 심경의 변화나 외적 충격이 가해지지 않고서는, 결혼 따위를 결심하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성격에 내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을 취미로 삼아서가 아니다. 우리 엄마랑 밥 먹을래? 아니. 엄마 이번에 서울 온다는데 밥 한번 먹을래? 아니, 꼭 먹어야 돼? 엄마랑 저녁 한번 먹을래? 너 대체 몇 번이냐 물어볼 거냐? 이제 그만 물어볼거야. 그리고 난 결심했다. 내 입으로 내가 당신에게 내 가족과 같이 밥을 먹자고 물어보는 일은 절대 없을거야. 어쩌면, 당신이 내 엄마를 볼 일은 그 전에도 없었듯이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리고 그게 당신이 바라는 일이리라. 당신은 내가 당신의 집에 칫솔이나 로션을 놔두는 것을 싫어한다. 내 집엔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그 손님들이 오해하는 게 싫어, 라고 그는 분명하게 말했고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의 집에 놀러갈 때에는 평소보다 두 배로 뚱뚱한 가방을 들고 간다. 아마 그때 내 모습을 지하철에서 본 사람이라면 내가 지갑과 수첩만 들고 다니는 자타칭 미니멀리스트라는 걸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을 만나기 전 나는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옥상으로 도망간 적도 있었고, 그의 친구들이 집으로 온다는 이유로 전철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잡아타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나는 그가 무신경한 게 싫다기보다는 - 물론 일 년 육 개월 정도 전, 아니다, 그와 사귄 후 삼 개월 정도 지나서, 우리는 권태기가 매우 빨리 온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부터 그의 무신경함과 냉정함과 사나운 말투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 내 일기와 지금 내 일기에 얼마나 변화가 없는지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는 또 내 나름대로 그런 불만을 표출해왔을 것이다. 그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나에게 좀 덜 무신경한 사람이 되어주리라는 기대도 했었는/데 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에 대해서는 최악의, 가장 나쁜,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예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울 때 내가 무슨 말을 했기에 우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주지 않고 대신 왜 짜증나게 우는 거야, 라고 생각할 뿐이니까 - 그가 일관성이 없는 게 싫은 것이다. 그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싫은 것이다.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정성의 원리가 들어맞는 게 싫은 것이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증거들, 또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을 수 없으리라는 증거들은 많다. 손에 잡히게 많다. 우리 커플링 하나 맞출까? 나 반지 싫어해, 언제까지 그거 물어볼 거야? 저녁에 뭐 먹을까? 나 그거 싫어해 ,언제까지 물어볼 거야? 나도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과 영화와 사랑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그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입으로는 늘 괜찮다고 하고 속으로는 늘 한심하게 여긴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도 귀하게 여기지 않듯이, 사실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그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가 소개팅 앱을 깐 것을 발견했을 때 보다 극적인 태도를 취했을 것 같고, 몇 번이나 물어볼 건지 짜증스럽게 대꾸할 때마다 화를 냈을 것 같고, 적어도 열 번 중 세 번은 내가 원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싶다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게서 언제든 달아나리라는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 맛있어, 음악 좋아, 그래 그럼 그러지 말자 ,라고 말한다. 그 많은 도망과 탈출과 도피의 상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그를 만나고 있고, 그를 정리하지 않고 있다. 언제든 도망갈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받은 선물들을 쇼핑백에 넣어둔다. 그에게 그 쇼핑백만 주고 나면 어디로든 사라져도 아무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나는 내가 아무 알림이나 경고 없이 어느날 핸드폰을 바꾸고 이사를 가고 외국에 나가더라도 그가 굳이 궁금해하면서 날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관계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인지, 그리고 결국 누구의 어떤 행복을 위한 관계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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