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1817년 마리 셸리 (Mary Shelley)라는 젊은 영국 여성작가에 의해 쓰인 공상 과학 (Sci-Fi) 소설이자 호러(Horror) 장르의 소설로 현재까지도 영화, 드라마 그리고 만화의 주인공까지 21C에도 여전히 잊히지 않고 회자되는 캐릭터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아마, 미디어를 통해 이 캐릭터를 많이 접하다 보니, 이미 익숙해져 버린 내용들은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욕망 자체를 눌러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5월 1일! 긴 연휴를 알리는 시작.
이번 기회만큼은 책을 읽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프랑켄슈타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지? 인간의 상상력이란...'
나의 의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의 '안드로이드'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불리는 '프랑켄슈타인',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탄생 배경에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인도네시아의 한 섬 숨바와 (Sumbawa)의 탐보라 (Tambora) 화산 폭발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숨바와 섬에서 영국까지의 거리는 86,000마일 (13,800km)이다. 한국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가 3,000Km 정도인데, 대략 비행기로 20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거리이다.
물리적으로는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1815년 4월 10일 폭발한 탐보라 화산은 약 6일 동안 계속 용암을 분출하며, 19세기 인간의 역사에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탐보라 화산 폭발은 10,000년 이내의 가장 큰 화산 폭발로 기록되어 있다. 폭발음은 2,000Km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며, 위로 40Km 달하는 두꺼운 화산재 층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산 폭발 후 산의 높이는 약 1,000m 정도 낮아졌고, 당시 폭발로 인한 사상자의 수는 100,0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두터운 화산재와 그리고 1억 2천만 톤에 달하는 이산화황(SO2)은 자연스럽게 지표로 쏟아지던 모든 햇빛을 차단하였다. 문제는 하늘을 뚫고 올라갈 듯한 이 두터운 가스층이 대기권 높은 곳의 제트스트림을 타고 지구전역으로 뻗어 나가 버린 것이다.
이 영향은 당시 세계 전역의 날씨를 변화 시켰다.
지구 전체의 온도는 지역에 따라 평균 1도 이상 더 낮아졌고, 하늘은 흐렸고, 대기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1816년 여름, 잉글랜드지방에는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인류는 흉년, 인플레이션, 전염병(콜레라)과 기아로 고통받게 되었고 그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1816년 여름, 영국에 눈이 내렸듯이 스위스 제네바의 여름도 영국과 다를 바 없이 우울했다.
그 우울한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그 해 여름을 ‘흡혈귀의 여름 (Vampire Summer)’이라고 불렀다.
그 여름 바이런 경 (우리가 생각하는 영국작가 바이런)은 자신의 친우들을 데리고 제네바 호수의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된다. 그 일행 중에는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고드윈 (Mary Wollstonecraft Godwin)이라는 미혼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명한 철학자였던 윌리엄 고드윈과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딸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18세, 퍼시 셸리 (Percy Shelly)와 사랑에 빠진 수줍은 아가씨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흘러 1821년 파리에서 메리는 자신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2번째 판을 소개하며 메리 셸리 (Mary Shelly)라는 이름으로 공식 데뷔하게 된다.
이미 밝혔듯이 1816년 유럽의 여름은 처참했으며, 나쁜 날씨덕에 꼼작 없이 별장에 갇히게 된 바이런 경 일행은 독일의 유령이야기, 전기 그리고 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하게 된 실제 이야기이다.
당시 바이런 경의 일행 중에는 내과 의사였던 존 폴리도리 (Jonh Polidori)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최초의 흡혈귀 소설이라고 알려진 흡혈귀이야기 ( Vampyre, a tale)를 쓴 사람으로 역시 스위스의 별장에서 쓰여진 이야기이다.
후에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메리 셸리는 당시 프랑켄슈타인의 아이디어를 ‘꿈’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냥 꿈이 아니라 아주 생생하게 깨어 있는 꿈 : 루시드 드림 (Lucid Dream)과 악몽을 통해서 그녀는 세기의 걸작을 완성했다. 실제 이 책은 1818년에 영국에서 출판되었지만, 당시 작가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남편인 퍼시 셸리가 작가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2번째 판에서 메리 셸리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소설의 실제 작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추측하건대,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상 (산업혁명은 18세기말 이미 시작되었으며, 1844년 역사학자인 토인비에 의해 ‘산업혁명’이라고 지칭되었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한 우울한 날씨와 자연재해, 전기와 해부학의 태동, 기근과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헬레나 섬에서 탈출하면서 워털루전쟁이 발발했다)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세기의 역작이 탄생하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으며, 스위스 별장에서의 대화와 토론은 그녀에게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세상의 놀랍고도 재밌는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우연한 사건들의 연결을 통해 탄생한다.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될 때마다 내가 살고 있는 물과 흙으로 이루어진 이 지구라는 공간이 얼마나 신비한 곳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가 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 세상 대부분의 창조가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매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1817년, 탐보라 화산의 폭발은 또 한 번의 큰 '자국'을 인간사에 남기게 된다.
바로 자전거! 최초의 자전거는 독일인 칼 본 드라이스 남작 (Baron Karl von Drais)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두 바퀴가 있어서 ‘달리는 기계’ (Laufmaschine)라고 불렸다. 페달이 없다 보니 발로 밀어서 타야 했지만, 외형은 현대의 자전거와 상당히 유사하였으며, 이후로 자전거는 몇번의 개선과 장치의 발명을 통해 현대에 이르게 된다. 자전거의 발명이 어떻게 화산폭발과 관련이 되었냐고?
바로 배고픔이다. 화산폭발이 몰고 온 기근과 식량 부족은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고기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대체할 이동 수단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인간의 욕구는 결국 ‘자전거’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2019년부터 2023년 5월 11일까지, 3년 4개월만에 종식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고.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흥미롭게 와 닿았던 하루였다. 우리는 어떤 미래로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