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는 어떻게 메탈의 시대에 종말을 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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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하게 엉킨 금발에 쌍꺼풀이 진 창백한 얼굴.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를 입은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우수가 서린 눈빛으로 고독을 노래하는 프론트맨. 마이크를 넘어뜨리고 기타를 부순 뒤 드럼셋으로 몸을 던지는 반골의 청년. 록의 마지막 아이콘이라고 불리우는 커트 코베인의 모습이다. 메탈의 시대가 저물어 갈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단 세 장의 앨범으로 시대를 휩쓸고 사라져 버린 그의 삶은 아직까지도 신화와 같이 묘사되고는 하는데, 그의 생애와 말로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찌되었든 그가 일으킨 열풍이 차후 록 음악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음악을 넘어 시대의 우상이었고, 9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이었으며, 사실상 최후의 록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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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시애틀에서 태동한 그런지 록(Grunge Rock)은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사운드가든(Soundgarden) 그리고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를 필두로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일으킨 음악적 기류이다. 상기된 네 개의 밴드가 보통 이 흐름의 주역으로 거론되며, 가끔씩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나 멜빈스(Melvins), 혹은 같은 시애틀 출신의 머드허니(Mudhoney) 등이 그런지 록으로 함께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지 록은 워낙 그 역사가 짧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지역을 연고로 둔 네 개의 밴드가 당시의 록 음악계를 흔들어 놓을 만큼 유난히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이들, 일명 시애틀의 'Big Four'를 그런지라는 흐름 자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런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을 뿐,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과 지향점은 사실 꽤나 다르다. 너바나는 스스로를 펑크(Punk) 밴드라 정의한 바 있고, 앨리스 인 체인스는 느린 템포의 리프를 중심으로 한 헤비메탈 밴드에 가까우며, 사운드가든은 헤비메탈의 하드웨어에 하드 록의 뉘앙스를 녹여냈다. 어떻게 보면 펄 잼이 가장 '그런지'의 이미지와 부합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이어져 온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두고 보면 장르의 구분이 무색하기도 하거니와, 'Black', 'Even Flow', 'Alive' 등 90년대 초의 메가 히트곡들은 영락없는 하드 록이기 때문에 이들을 그런지 록 밴드라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오직 네 밴드의 '음악'만을 놓고 보면,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지'라는 테두리는 모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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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성 강한 네 밴드의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이전 세대의 음악인 헤비메탈에 가장 가까운 성향을 보였던 앨리스 인 체인스는 스펙터와 워윅 사의 출력 높은 베이스와 원 볼륨 / 원 톤의 G&L 슈퍼스트랫을 메인 기어로 사용한다. 음울하고 폭발적인 목소리와 무거운 리프, 그리고 보그너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센티멘털한 하이게인은 느리고, 끈적하고, 강력하다. 그런지라는 말을 대입하기 민망할 정도로 '메탈릭'한 사운드, 드세고 단단한 더블 보컬, 그리고 그에 비해 어딘가 수더분한 비주얼. 이것이 앨리스 인 체인스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다.
한편 사운드가든은 헤비메탈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세련된 음악적 센스로 그들만의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었다. 맷 캐머런의 드러밍과 킴 테일의 리프 메이킹이 융합되며 만들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탄탄한 메탈 사운드 위에 건조한 하드 록의 톤을 입힌다. 이 신선하면서도 귀에 익은 듯한 스타일의 정립에는 클래식한 기어와 남성적인 목소리 또한 한몫을 했다. 록 사운드의 정석과도 같은 펜더 프레시젼 베이스와 깁슨 ES-335의 선율 위를 가로지르는 크리스 코넬의 보컬은 사운드가든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그런지'의 원초적 의미에 가장 근접해 있는 두 밴드, 너바나와 펄 잼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빈티지'하다. 보스 디스토션과 프로코 랫, 그리고 코러스와 플랜저. 이렇게 서너 개의 페달을 대충 바닥에 던져 놓고 펜더 머스탱으로 신경질적인 파워 코드를 긁어 대는 커트 코베인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베이스를 메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크리스 노보셀릭, 그리고 그 뒤로 웃통을 벗어던지고 머리보다 높이 달려 있는 심벌을 마구 후려치는 데이브 그롤. 디스토션 기반의 극도로 단순화된 사운드 너머로 특유의 서정성이 엿보이는 너바나의 음악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광란의 풍경은 90년대 록 음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네 밴드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펄 잼은 정규 앨범만 11장을 발표하며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꾀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어느덧 베테랑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그들의 음악적 세계는 실로 다채롭지만, 그 모든 커리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하드 록’이라 할 수 있다. 빈티지한 콘셉트를 바탕에 둔 그루비한 리프와, 하드 록 밴드의 보컬로서는 다소 독특하게도 알이 굵은 목소리를 가진 에디 베더를 전면에 내세운 펄 잼은 객석으로 뛰어들고 공연장 천장에 설치된 비계에 매달리는 등 너바나의 광란에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그런지 시대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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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각자의 색채가 너무도 뚜렷했던 너바나와 펄 잼, 사운드가든과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음악은 그 시작점부터 근원을 달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커트 코베인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기점으로 시애틀 록의 인기가 사실상 종말을 맞았던 탓에 결국 확실한 합일점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들은 활동하는 기간 내내 서로를 의식하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집중했고, 멤버의 자살과 헤로인 중독, 밴드의 와해 등 제각기 다른 요인으로 인해 20세기와 함께 쓸쓸한 종말을 맞았다. 따라서 그런지 록을 단순히 그들의 음악적 색채를 정의하는 장르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지(Grunge)'라는 말의 뜻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런지 록이라는 장르가 이름 지어진 방식이 기존부터 존재해 왔던 록의 장르들이 명명되었던 방식과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하드 록과 소프트 록은 음악의 세기와 질감에 따라, 사이키델릭 록은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이름 지어졌고 포크 록은 그 뿌리에 따라,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은 그 지향점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헤비메탈이라는 이름은 기존의 하드 록과 비견되는 더욱 차별화된 디스토션 사운드를 특정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런지(Grunge)'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Grime', 'Dirt', 즉 '먼지'라는 뜻으로, 음악적 성향이나 지향점, 혹은 그 모태가 되는 음악 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런지와 가장 닮아있는 장르는 '펑크(Punk) 록'이다. 썩은 나무, 불쏘시개, 혹은 불한당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펑크는 197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기능을 수행한 음악적 양식이자 문화로, 그 음악을 창조하고 수행한 주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그런지라는 장르와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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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와 펑크의 토대가 된 '개러지(Garage) 록'도 이들과 마찬가지이다. 개러지(Garage), 즉 차고에 모여 어설프게 비틀즈와 더 후를 카피하던 이들의 음악은 그들만의 비완전성과 간결함으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음악이 아닌, 음악의 주체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물론 개러지 록과 펑크 록은 엄연히 다르고, 펑크 록과 그런지 록 또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의 차이는 비단 음악성뿐만 아니라 그 주체의 사회적 계급과 성향의 차이까지도 의미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록의 장르 중에서 이러한 양식의 음악들이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만의 공통된 키워드인 '비주류성' 덕분이다. 메인스트림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켜 낸 개러지 록의 정체성은 분노와 저항 정신을 함의하며 펑크 록으로 발전하고, 한 세대를 지나 90년대에 이르러 '비주류'를 자처하는 그런지 록을 낳는다. 안개가 낀 시애틀의 먼지 가득한 클럽에서 내면에 쌓인 분노를 음악의 폭발성으로 승화시키는 이들. 여기로부터 그런지 록은 출발한다.
따라서, 그런지 록은 단순한 음악적 흐름이 아닌 사회적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80년대에 접어들며 한없이 진부해진 음악들과 대중적, 상업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른 거대 메탈 밴드들에 잠식된 록 씬. 그곳에 불시착한 시애틀의 너저분한 젊은이들. 이들이 일으키는 록 음악의 순수한 폭발력과 공격성.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음악적 본질에 집중된 뜨거움. 사운드의 결은 다르지만 이러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시애틀의 젊은 밴드들은 '그런지 록'이라는 이름에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기 복제에 빠진 80년대 대중음악의 홍수 한가운데서 등장한 너바나는 그러므로, 그런지 록의 일부가 아니라 아류가 되기를 거부했던 당대의 돌풍 그 자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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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는 록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들의 음악은 주류에서 비주류로의 전환이자 LA에서 시애틀로의, 모틀리 크루에서 지미 헨드릭스로의 귀환이며, 펑크와 하드 록의, 다시 말해 시대가 잃어버렸던 오리진과 오리지널리티의 재현이다. 그들은 '순수성'이라는 측면에서 퇴보의 연대기였다고 할 수 있는 록 음악의 노선으로부터 급격하게 이탈하였으며, 커트 코베인이 유서에 남긴 닐 영의 'My, My, Hey, Hey' 속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보다 불타 없어지는 편이 낫다)"라는 구절처럼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의 삶처럼 짧았던 그런지 록의 발자취는, 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정신적 영감을 주면서 지금까지도 신화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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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ground Image : (C) Charles Pet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