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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파이프 PIPE K Feb 10. 2022

겨울을 떠나보내며

언젠가 이 세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거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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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참 쓸쓸하군요, 하며 웃다가 병이 깊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엔 저수지에 가라앉은 목각 인형을 건져 올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굴착기 끝에 닿은 인형의 마디마디가 부러져 나뭇조각에 불과해져버렸다고요


나도 인간의 형체가 바닥났어요 그냥 조그맣고 쪼글쪼글한 조약돌일 뿐이에요, 라고 하자 그는 달걀도 깨뜨리지 않을 만큼 얌전하게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습니다


-윤혜지, '사로잡힌 세계' 中


(C) 2022. PIPE K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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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해를 떠나보낸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지만,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인생의 어떤 길고 우울한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깊은 병중에 있다. 창밖으로는 어제와 똑같은 풍경들. 권태라고 부르기도 무서울 만큼 겹겹이 쌓여 있는 시간들 사이로 해가 뜨고, 진다. 그 속에서 나의 생활은 조금 아프다. 무르고, 예민하며 때로 죄스럽다. 그런 세계에 소복소복 눈이 쌓인다. 조각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차를 끓이다가 아주 잠깐, 울고 싶어졌다. 머나먼 나라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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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지. 2021. 사로잡힌 세계.

Background Image : (C) 2022. PIPE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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