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감사
아침 7시 40분, 마을버스의 종점에서 내렸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알맞은 시간에 도착했다. 오늘은 3개월 만의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처음은 무엇이든 떨리는 법. 불안함과 동시에 설렘으로 마음이 요동을 쳤다. 건물에 도착했다고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니 1층으로 내려갈 테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아이보리 색의 타일 바닥과 환한 조명의 높은 층고가 눈에 띄었다. 이제부터 이곳이 내가 일하게 될 곳이구나. 스피드게이트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무채색의 옷. 회색 도시 속 회색 얼굴이라는 소설 '모모' 속 내용이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밝은 건물 안과 대조되어 더욱 어두워 보였다. 나도 몇 주 후면 저런 모습이려나. 잠시 사념에 잠기니 담당자로 보이는 분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니 담당자가 나를 바로 알아봤다.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자리를 배정받고는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화상으로 면접을 봤던 터라 누가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만 연신 반복했다. 컴퓨터 세팅을 완료하니 업무를 주셨다. 약 50명의 고객에게 독려를 가장한 독촉 전화를 돌리는 업무였다. 서비스직 경력을 살려 상냥한 톤으로 안내하니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오전 동안 그 일을 하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품 회사라 그런지 구내식이 아주 맛있었다. 대화에 끼어보려고 했지만 주제가 회사 이벤트 내용이라 할 수 없었다. 그저 접시 위 음식의 모양새를 보며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고개만 가끔가다가 끄덕거려 주면 그래도 영 사회성이 없는 사람처럼은 비치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내일부터는 혼자 먹고 싶다.)
오후 다섯 시,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사내 아이디가 발급이 되지 않아서 오전의 일거리를 끝내고는 멍하니 앉아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브런치 스토리 글을 읽었다. 핀터레스트로 다음 주 주말에 갈 결혼식 복장을 뭐 입을까 고르느라 배터리도 거의 다 닳을 지경이었다.
오전의 떨림은 없어진 지 오래다. 오랜만에 하는 일임에도 여전히 지루하고 시간이 잘 안 갔다. 8시간이 내게는 너무나도 길다. 물론 단기간 근무에 파견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네임드 회사에 내가 왜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면접도 잘 못 봤는데. 문득 가만히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을 때 드는 생각이 그래도 참 감사하다는 거다. 지난여름 동안에 이별을 겪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제야 좋은 기운이 마구 들어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 글은 2024년 9월에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