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미지의 시골로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은 도심 속 옥탑 주택이었다. 1층엔 미용실과 호프집, 인형 뽑기방이 있고, 2층엔 당구장. 3층엔 교회가 있던 4층짜리 상가 건물. 그 위엔 집 밖에 나가는 게 싫어 스스로를 가둔 라푼젤이 살고 있었다.
상가 건물 계단은 성인이 오르내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낮이가 들쑥날쑥했다. 험난한 계단을 내려갔을 때 펼쳐진 풍경은 어린 나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까만 매연을 뿜어내며 좁은 골목길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쏟아질 것 같은 고층 건물들. 저마다 바쁜 걸음을 옮기는 많은 인파와 지하에 깔려있는 어둑어둑한 철도 등은 겁이 많은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을 심어주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집과 옥상뿐이었고, 그 작은 세상은 나의 전부였다.
***
옥상 마당에는 엄마가 키우는 화분이 가득했다. 그 때문인지 4층 옥상에선 다양한 곤충들이 발견되곤 했는데, 다행히 나는 곤충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가 갔을 때만 만날 수 있던 메뚜기나 잠자리,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소금쟁이를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께서는 여름이면 꼭 계곡으로 휴가를 데려가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휴가지는 회색빛 건물 대신 푸르른 나뭇잎들이 반겨주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잠을 깨우는 오토바이 소리와 술 취한 아저씨들의 고함 대신 잔잔한 풀벌레 울음소리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곳. 계곡에서 잡은 물고기와 다슬기만 있다면 한끼 식사 정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곳은, 우리에게 유토피아나 마찬가지였다.
행복해하는 우리의 얼굴을 보며 아빠는 꼭 말씀하셨다.
"시골만 내려와도 먹고 살 걱정은 없어. 우리 이다음에 꼭 시골에 내려와서 살자."
어린 시절 농사를 지으며 사셨던 부모님의 마음속엔 늘 귀촌에 대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아쉬운 휴가의 마지막 밤이면 언니와 나는 하늘에 총총 박힌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른 시골에서 살고 싶다. 그럼 매일 매일 휴가 온 기분이겠지?"
2박 3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울적했다. 창밖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보이면 도시로 돌아온 게 피부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리운 나의 집이라곤 하지만, 무거운 짐을 하나씩 들고 상가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당장이라도 시골로 돌아가 시원한 계곡에 뛰어들고 싶어졌다.
인고의 시간을 지나 겨우 4층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비로소 나를 반겨주는 작은 세상이 펼쳐졌다. 휴가를 떠나기 전 단도리를 마쳤는데도 상추는 먹기 좋을 정도로 자라있었고, 조롱조롱 달린 방울토마토는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루비같은 방울토마토를 따 먹으며 나는 막연히 미래를 꿈꿔보았다. 언젠가 옥상 정원 속 작은 화분이 아닌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 먹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열 살이 되던 해. 옥탑방의 라푼젤은 도심을 떠나 시골로 떠나게 되었다. 연고 하나 없는 미지의 시골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