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키운 선물
"엄마, 방울토마토는 언제 먹을 수 있어요?"
초록색 열매가 방울방울 달린 화분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옥상 화단을 가꾸던 엄마는 내가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면 먹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꼬박꼬박 지켰고, 직접 기른 열매를 하루빨리 먹고 싶어 매일 옥상을 다섯 바퀴씩 돌았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방울토마토가 새빨갛게 익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시장에서 산 방울토마토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느껴졌던 건 뙤약볕 아래에서 쏟아부은 정성 때문이었을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수확한 방울토마토 한 알은 그 시절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이었다.
***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였는지 열 살이 되던 해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온 나는 농사에 열심을 냈다. 처음으로 살게 된 시골집엔 작은 텃밭이 딸려있었는데, 방울토마토 다섯 대가 밭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게 되었다. 비옥한 땅에 자리 잡은 방울토마토는 도심 속에서 키운 것에 비해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내 키를 훌쩍 넘었을 땐 잭과 콩나무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는 이틀에 한 번꼴로 구멍이 송송 뚫린 소쿠리를 품에 안겨주셨다. 그럼 나는 곧장 텃밭으로 달려갔는데, 탐스러운 열매가 얼마나 많은지 토마토 가지가 너절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가지를 이리저리 들추며 한 알의 토마토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열매를 수확했다. 물론 소쿠리보다는 입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많았지만 말이다.
텃밭으로 시작한 농사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우리 가족은 본격적으로 귀촌에서 귀농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농사가 생업이 되니 작물을 대량으로 키워야 했다. 전에는 우리 먹을 감자 열 알을 심었다면, 이제는 열 박스를 넘게 심어야 했다. 귀촌과 귀농은 차이가 컸다. 작물별 시기를 맞추느라 농촌 생활의 여유로움을 앗아갔으며 몸 또한 골병이 들게 했다. 밭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가족들의 얼굴엔 늘 짜증이 가득했고, 텃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은 잊혀 갔다.
매년 텃밭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방울토마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수확 시기를 놓친 방울토마토는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육이 갈라지고 내용물이 다 빠져나오며 오랜 시간 썩은 내를 풍겼기 때문이다. 장맛비를 흠뻑 맞았을 때야 그것들은 거름이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다음 해 봄이 되었다.
"토마토 모종 또 사다 심었어요?"
나의 물음에 엄마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돈이 되는 작물에 쏟아부을 시간과 정성도 모자란데, 어느 누가 토마토 모종을 심겠냐는 의미였다. 나는 시장에 파는 모종보다 훨씬 작은 토마토 나무를 내려다보았다. 지난해 과육이 벌어지며 땅속으로 스며든 토마토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워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방울토마토는 한 줌 햇볕과 비를 맞으며 자랐다. 그리고 어느 더운 여름날. 텃밭을 절반이나 뒤덮은 잡초 사이에서 기어코 쪼글쪼글하고 못생긴 주황색 열매를 맺었다. 나는 방울토마토 한 알을 따서 입 안에 넣었다. 잡초에 양분을 빼앗겨 비루먹은 모습이었지만 씹어보자 톡 하고 껍질이 터지며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한여름의 갈증을 해소하기 충분한 맛이었다.
문득, 방울토마토 화분 하나로 행복해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농사일이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소소한 행복을 잊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것 같아서.
인생에 하나도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을까? 특히나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농사일에 말이다. 그럼에도 농부가 되길 선택한 이유는 수고로 키운 농작물을 맛볼 때 느끼는 보람 때문이었을 텐데, 짜증으로만 가득한 지난날들을 떠올리니 씁쓸한 웃음을 새어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소한 행복을 잊고 살았을 때도 너는 열심히 자라 열매를 맺고 있었구나."
볼품없는 토마토 나무 앞에 쪼그려 앉은 나는 산발 머리처럼 가지에 엉켜있는 잡초를 묵묵히 뜯어냈다.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떠다 주고 나니 비로소 마음속이 후련해지며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행복은 고작 방울토마토 한 알이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