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글
“개미야, 이건 나 가면 읽어.”
할머니 댁에 맡겨지는 날. 언니는 두툼한 편지봉투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언니가 준 편지 속 내용이 너무 궁금했지만, 꼭 참았다. 해 질 무렵. 적재함의 반도 채우지 못한 짐과 함께 작은 나를 내려둔 트럭이 떠날 때 엄마도 울고, 언니도 울고, 나도 울었다.
2005년, 나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반평생 살던 서울을 떠나 연고 하나 없는 서산으로 내려갔고, 중·고등학생인 언니들은 서울 이모네 집에 남았다. 초등학생인 나는 성남에 사는 외할머니께 맡겨지게 되었다.
이모와 언니들은 나를 홀로 할머니 댁에 보내는 걸 반대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는 이모네 집에 자녀를 셋이나 맡기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할머니 또한 막내딸인 이모가 힘든 걸 원치 않았다.
방 한 칸이 전부인 할머니 집에는 덜 마른 곰팡내가 났다. 낯선 곳에 남겨진 나를 달래기 위해 할머니는 과자를 사 오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과자 한 봉지의 양이 그렇게 많다는 걸. 언제나 언니들과 나눠 먹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 먹지 못한 과자를 고무줄로 묶어두고, 언니가 남기고 간 봉투를 열어보았다. A4용지 두 장을 붙여놓은 크기의 편지지는 언니가 무척 아끼던 것이었다.
사랑하는 개미 보아라
삐뚤빼뚤한 글씨에 담긴 사랑의 언어는 읽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 후로도 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메일을 보내줬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뿐인 컴퓨터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쉬는 시간부터 달려간 컴퓨터실에서 언니가 보내준 메일을 읽고, 공책에 옮겨적었다. 그리고 그리움이 나를 삼키려 할 때마다 그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핸드폰이 보편화된 시대가 아니었다. 통화를 걸 수도 없었고, 문자 한 통에도 돈이 들었다. 아주 가끔 할머니의 핸드폰으로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는 날에는 멀티 메세지로 전환되지 않도록 글자 수를 맞추느라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핸드폰을 오래 쓴다는 이유로 발싸대기를 맞기도 했다. 그 뒤로는 문자를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밤이 되면 시린 코까지 이불을 끌어 올리고 누워,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만 가득한 방 안에서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날 찾으러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언니들을 다시 못 만나게 되면 어떡하지?
할머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선 ‘TV를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저기에 나가 가족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편지가 왔다. 꽃무늬가 찍힌 편지지였다. 엄마가 나를 위해 고르고 골라 보낸 편지엔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편지에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아쉬움과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는 당부가 담겨있었다.
잠 못 드는 날이면 엄마가 써준 편지를 읽었다. 그러다 보면 파도처럼 덮쳐오던 불안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날 깨달았다. 어떤 글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걸.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온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탁 앞으로 불렀다. 전학을 온 지 넉 달 만에 다시 떠나게 된 나는 친구들에게 미리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음 날 방학식에 갔더니,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4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말과 함께 언제든 연락하라며 집 전화번호를 적어준 편지였다. 한 친구는 가장 아끼는 인형의 악세사리를 잘라서 편지지에 붙여 주기도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친구들의 얼굴은 희미해졌지만, 편지글은 여전히 서랍 속에 남아 있다. 글은 사람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전학을 가는 친구에게, 사역을 마치고 다른 교회로 떠나는 전도사님에게, 한때 앙숙이었던 사촌 동생에게. 일기 숙제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나에게 편지 쓰기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편지지를 정성껏 고르고, 연필을 꾹꾹 눌러 글씨를 쓰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힐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생각지 못한 편지를 받고 놀라움과 감동 어린 표정을 짓는 상대방의 얼굴이 좋았다.
“개미는 늘 조용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는데, 편지를 받고 나니 개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 말에 쑥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편지를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편지 한 장이 뭐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짧은 글 한 장이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한 건 오리털 잠바도, 두툼한 이불도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써 내려간 몇 장의 종이였다.
그래서 오늘도 펜을 든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누군가를 살리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