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망망대해를 건너와 직장도 잡고 결혼도 했으니 이 정도면 됐다, 하고 스스로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싶을 때도 있지만 뉴질랜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언어의 장벽은 여전히, 매우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화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일어날 상황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했고 사무실에서는 누가 내 말을 들을까 봐 일부러 전화 통화를 피하곤 했다. 직접 하는 대화에서도 100% 이해하고 대꾸하기가 어려운데 전화 통화에서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없는 데다 말과 말투에서 모든 것을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뉴질랜드 토박이들은 말이 아주 빠르다. 게다가 특유의 발음이 있어서 잘못 알아듣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나 같은 외국인들도 아주 많아서 영어 자체는 완벽하지만 발음이 너무 세서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 언뜻 들으면 발음은 굉장히 좋은 것 같은데 문법적으로 틀리게 말하는 경우 등 같은 영어를 쓰지만 알아듣지 못할 경우의 수는 너무나 많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 있게 하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영어를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하게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많이 늘었겠다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생에서는 글렀다, 고 말한다. 우스갯소리로들 듣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진심이다. 영어를 자신 있게 할 때 확실히 기회는 더 많아진다. 말할 기회, 사람을 사귈 기회, 더 나은 직업을 가질 기회, 그래서 더 말할 기회. 기회가 기회를 낳는다고 할까.
'언어의 장벽'이라고 썼지만 어쩌면 '마음의 장벽'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언어가 문제라기보다 마음이 문제인 것 같아서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원래 나서길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영어를 쓸 때면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서 누가 내 영어를 그렇게나 신경 쓸까.
세상을 보는 눈도 내 눈이고 세상을 평가하는 잣대도 내 잣대다. '언어의 장벽' 또한 내 '마음의 장벽'이라면 그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이도 결국 나 자신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