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을 한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누가 '이민 10년 차'라고 하면 "와, 진짜요? 뉴질랜드 사람 다 되셨겠어요."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내 말을 들은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국 생활도 이제 11년이 넘어 12년 차. 처음 2년 간은 이곳에 살러 온 것이 아니었고 한국에 가서 몇 달씩 있었던 적도 있어서 이민 12년 차라고 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외국 생활 10년이 넘었는데 겨우 1, 2년쯤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쨌든 12년 전 이곳에 이방인으로 머물 때는 10년 정도 지나면 원어민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한국 문화나 음식에 집착하지 않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나는 아직도 빵을 한 끼 이상 먹으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속이 안 좋거나 피곤할 때면 따끈하고 매운 국물을 떠올린다. 떡볶이와 라면은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야 하는 '필수식'이 되었고 한국 음식을 최소 이틀에 한 끼는 먹어야 '살았다' 하는 마음이 든다.
김치찌개는 내 최애 음식이다.
누군가가 물은 적이 있다. 죽을 때까지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뭘 먹겠느냐고. 나는 '김치찌개'라고 대답하고는 '엄마 김치로 한 김치찌개'라고 덧붙였다.
큰 냄비에 캔 참치를 넣어 김치찌개를 끓이면 나는 질리지도 않고 며칠 씩 먹곤 했다. 거기에 조미김도 함께 라면 더할 게 없었다. 김치찌개는 간이 강해서 먹고 나면 언제나 물이 먹혔지만 그래도 김치와 참치, 그 국물을 숟가락 가득 떠먹을 때면 캬~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이 데는 일도 흔했다.
외국에 살면서 엄마표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꿈에 가깝다. 서 너 해 정도는 엄마가 김장 김치를 보내주기도 했다. 말로는 "사 먹으면 되는데 뭘 보내. 사 먹는 게 더 싸."라고 하면서도 막상 받으면 그만큼 소중한 것도 없었다. 예전엔 그냥 버리던 배추 뿌리 쪽까지 칼로 쓱쓱 썰어 와작와작 씹어먹을 정도였다.
코로나로 엄마표 김치는 배달되지 않았다.
한인 슈퍼에 가도 유통이 어려워서 인지 김치가 많지 않다. 아니, 김치는 있는데 사 먹을 만한 싼 김치가 없다. 비싼 김치도 맛이 그럭저럭 하니 왠지 돈이 아깝다. 한인 식당에 가서 먹기도 아쉽다. 갈 때마다 "에이, 역시 별로네." 하는 후회만 남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선데이 마켓에 가서 '무'를 샀다. 중국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배추, 무 같은 것들을 팔곤 한다. 물론 한국처럼 단단하고 꽉 찬 배추나 무는 아니다. 특유의 단 맛도 없다. 배추를 들어보니 가볍고 힘이 없다. 불안하다. 무도 가늘고 긴 형태지만 시험 삼아 사보았다.
까나리액젓만 넣어도 되는 레시피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았다. 다른 레시피는 대부분 새우젓이 필요했다(안타깝게도 새우젓은 생이라 그런지 비싸다). 무를 소금과 설탕에 절여 고춧가루, 까나리액젓, 마늘만 넣으면 되는 레시피다. 너무 간단해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처음 담그는데 어떠랴 싶었다. 그러다 얻어걸리면 좋은 거고,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야매 깍두기를 담근 지 사흘 째, 버리지 않고 먹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