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 떡볶이

냠냠 마시쪄

by 개망


떡볶이가 먹고 싶다. 쫄깃하고 말랑한 떡을 포크로 꾹 찍어 떡볶이 양념을 묻혀 그 양념이 떨어지기 전에 입에 쏙, 생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떡볶이를 사 먹을 데가 없다. 실제로 파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이만 원 돈을 주고 밍밍한, 동네 떡볶이보다 못한 떡볶이를 사 먹자니 돈이 아깝다. 혹시나 하고 먹고 역시나 하고 실망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다행히 한국 슈퍼에 가면 떡볶이 떡, 떡국 떡, 냉동 오뎅, 냉동 만두 같은 걸 쉽게 구할 수 있다(냉동 김말이가 짱이데, 너무 비싸서 아주 아주 가끔 큰맘 먹고 사 먹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떡볶이 재료는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두는 편인데 오뎅이 떨어진 지 한참 되었지만 한국 슈퍼에 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떡볶이가 먹고 싶다. 어쩌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못 먹는다는 건 너무 슬프다. 그래도 나에겐 매운 고추장과 떡이 있다. 오뎅이 안 들어간다고 떡볶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래, 먹자!




냉동실에서 떡국 떡을 꺼내 찬물에 담가둔다. 냉동된 떡은 급히 요리하면 쉽게 갈라진다. 먹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그대로 미관상 안 좋으니 미리 물에 담가 찬기를 뺀다. 전기레인지에 물을 올리고 마법의 가루(다시다라고도 한다)를 반 숟가락 넣는다.


냉장고를 뒤지니 싹이 살짝 난 양파와 표면이 약간 거뭇거뭇해진 양배추가 있다. 양파는 뿌리와 싹을 잘라내고 황금색 껍질을 쭉쭉 벗겨낸 다음 반만 잘라 쓱쓱 썰어둔다. 양배추는 양파의 두세 배 분량으로 썰어둔다. 물이 데워진 후, 끓어오르기 전에 고추장을 넣어주면 딱인데 손이 느린 나는 항상 이 시기를 놓친다. 마구 끓어 넘치려는 냄비의 뚜껑을 열고 고추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물에 살살 풀어준다. 이제 썰어 둔 양파와 양배추, 찬물에 담가두었던 떡을 물에서 건져 끓는 물이 튀지 않게 냄비에 아주 살살 넣어준다. 하지만 물이 튀는 건 피할 수 없다.


오뎅이 없으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고추장 물에 떡만 넣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비상용 냉동 만두가 있었다. 에어 프라이어에 돌리면 이보다 쉬운 일이 없다. 에어 프라이어를 180도로 예열한다.


떡과 고추장을 넣어 살짝 사그라들었던 물이 다시 끓고 있다. 안 돼, 아직 설탕과 간장이 남았다고! 급히 설탕을 한 숟가락 대충 넣고 간장을 한 숟가락 넘게 대충 넣는다. 레시피 따위는 필요 없다. 나의 소울을 채우는 떡볶이에 나의 감각을 채워 넣는다. 불을 줄이고 졸여준다. 이때 맘이 내키면 올리고당을 넣어준다. 고춧가루도 좋다. 근데 뭐 다 귀찮으니 오늘은 이렇게 끝.


예열이 끝난 에어프라이어에 만두를 열 개 넣어준다. 그보다 적게 넣으면 너무 적은 것 같고 그보다 많이 넣으면 너무 많은 것 같다. 오 분 정도 돌린 후에 잠깐 꺼내 흔들어주고 다시 오 분.


냉장고를 다시 살핀다. 파, 파, 파, 가 있어야 하는데. 있다 있어. 파를 송송 썰어 두고 좀 더 기다린다. 떡볶이국물이 졸아들기를.


맛을 본다. 흠 뭔가 부족한 듯하다. 하지만 더 손을 대면 망할 수도 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파와 마지막 정점을 찍어줄 후춧가루가 이 떡볶이 국을 살려줄 거라 믿으며 도마에 썰어놓은 파를 쓱 훑어 냄비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후춧가루, 너만 믿는다.




전기레인지의 불을 끄고 떡볶이를 냄비 채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노릇노릇, 바삭바삭 구워진 만두를 작은 접시에 내 온다. 경건한 순간이다. 아직도 끓고 있는 듯 뜨거운 국물에 숟가락을 푹 넣어 떡 하나와 양파, 양배추, 파 한 조각씩을 떠서 입에 넣는다. 뜨.겁.다. 입천장이 벗겨질 예정입니다.


맛은 뭐, 100점 만점에 78점쯤. 떡볶이에 채운 나의 감각은 매번 달라 어느 날은 오~ 맛있는데, 하며 감탄할 정도지만 어느 날은 아~ 입만 베렸다, 할 정도로 별로다. 어쩌면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른 지도. 그래도, 맛이 있어도 없어도, 떡볶이를 배불리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먹고 싶은 걸 먹었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당분간은 떡볶이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다음에 한국 슈퍼에 가면 오뎅과 시판 떡볶이 소스를 꼭 사야겠다. 나의 감각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대기업의 맛이 채워주기를 바라며.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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