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나간 시간 붙잡기

기(起) - 낯선 세계에 발을 딛다

by 게으른 개미

대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나는 습관처럼 사진을 찍고, 다이어리를 썼다. 하루하루를 글과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모든 기억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과 느낀 감정들을 서둘러 적어두곤 했다. 꼭 글로 감정을 표현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 일상이 종이 위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안에서 혼자만의 만족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고 회사에서는 '오늘 할 일'을 적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냉정한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였을까.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 잊고 싶은 일이 더 많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점점 기록과 멀어져 가던 나에게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왔다. 그 감정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것이 아니라, 17개월이라는 시간을 사막에서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올라온 것이었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기억이든, 장소에 대한 감정이든 조금씩 흐려지다 결국엔 깨끗이 잊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보낸 내 시간을 어떻게든 남겨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다른 행성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낯선 기분을 느꼈고 성인이 된 이후 처음 겪는 큰 문화적 충돌 속에서 혼란과 성장통을 동시에 겪었다. 그 시간들을 혼자의 기억으로만 묻어두고 싶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나 혼자만의 위안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며 조용한 공감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신기하게도 내 주변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뚜렷하게 각인되었고, 그 장면들을 글로 남기겠다는 다짐은 세상을 다시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익숙해서 더 이상 인식조차 하지 못하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마치 처음 온 것처럼 나는 다시 사진을 찍고, 그때그때 짧은 메모를 남기며 시간을 붙잡기 시작했다.


이제, 기억의 시계를 2023년 10월 중순으로 되돌려보려 한다.


WhatsApp Image 2025-04-24 at 6.44.07 AM.jpe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