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結) - 다시 나를 세우다
처음 사막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일종의 충격에 휩싸였다. 그곳은 내가 살아오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황량한 모래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주변은 오직 고요와
적막뿐이었다. '여긴 아무것도 없구나' 라는 첫 느낌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최소한 낙타 한 마리 정도는 서비스로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 눈앞에는 오직 끝없는 모래와 먼지, 그리고 정지된 시간만이 존재했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찾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그저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만이 나를 감쌌다.
1. 인내: 흐름을 받아들이는 법
“햇살은 무자비했지만, 모래는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사막의 태양은 정말로 가혹했다. 낮 기온이 50도를 넘어가는 혹서기에는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태양이 내 몸을 내리찍으며, 마치 모든 힘을 서서히 빼앗아 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사막의 모래는 달랐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어도, 모래는 한마디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막에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인내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버티고, 견디고, 기다렸다. 처음엔 그저 무기력
하게만 느껴졌지만, 곧 깨달았다. 인내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받아들
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막은 이 중요한 진리를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내게 전달해주었다.
2. 고요의 가치: 말 없이 들리는 소리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마음속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막은 말 그대로 고요하다. 때론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듣게 되었다. 처음엔 그 적막이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나는 그 속에서 위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요는 내 마음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불필요한 소리와 자극이 사라진 그 공간에서, 나는 나 자신과 마주했다. 사막은
말없이 말하는 법을, 말 없이도 마음을 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고요는 때때로 가장
따뜻한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3. 본질에 집중하는 삶: 가벼운 짐
사막에서는 무엇이든 가볍게 가져야 했다.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과하면 짐이
되고, 부족해도 괴롭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막은 그 질문에 완전한 답을 주진 않았지만, 어렴풋한 방향과 단서를 건네주었다. 나는
본질적인 것들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하나씩 내려놓기로 했다. 그 과정은 불안과 욕심, 불필요한
자존심까지도 함께 덜어내는 연습이기도 했다. 사막은 나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단순함 속의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4. 방향 감각: 길을 잃어도 길은 있다
사막의 모래언덕은 끝없이 이어지며 명확한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는
깨달았다. 길이 없어도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처럼, 나의 내면에도 방향을 알려주는 감각이 존재했다. 때때로 그것은 직관이었고,
때로는 믿음이었다. 사막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며,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사막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이자, 결국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사막은 한없이 비어 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내면에서 많은
질문이 올라왔고, 그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가며 조금씩 성장했다. 사막은 나를 시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길러낸 공간이었다. 뜨거운 햇살과 고요, 그리고 끝없는 모래의 바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만났고, 나의 삶의 본질을 바라보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사우디아라비아로 또 부임 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사진 1,2] 사막에서도 낙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19개월동안 딱 한 번 봤다.
행운이었다.
[사진 3,4,5] 현장의 귀염둥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