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음악 교육에서 K-pop까지 : 분업과 공정으로 완성된 예술
스웨덴은 오래전부터 음악을 특별한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교육의 일부로 다뤄왔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 악기를 배우고, 밴드를 만들고, 음악을 ‘함께’ 연주한다. 클래식 음악 중심의 교육보다는 대중음악에 열려 있었고 그 덕분에 음악은 자연스럽게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스웨덴의 사회적으로 음악이 뿌리 내린데에 대해 “추워서 집 안에서 음악을 많이 해서 그렇다”는 농담 같은 설명이 따라붙지만, 그건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도 마찬가지로 북유럽의 추운 기후권에 속하지만, 음악을 하나의 산업이자 시스템의 차원까지 밀어붙인 나라는 유독 스웨덴이다.(*1) 이 격차는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선택, 계급 구조, 그리고 언어 환경의 차이에서 발생했다.
스웨덴은 비교적 귀족 중심의 음악 전통이 약한 나라였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왕실과 귀족이 후원한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가 아니었고 문화적 위계가 단단하게 굳어진 사회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재’가 대중음악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지켜야 할 전통이 없었고, 그래서 실험할 수 있었다.
영어 환경 역시 결정적이었다. 스웨덴은 더빙 대신 자막을 선택한 나라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 컨텐츠와 팝 음악을 원음으로 접했다. 영어는 시험 과목이기 전에 소리였다.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고, 그게 문제되지 않았다.(더빙 대신 자막을 택한 국가일수록 영어 숙련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환경을 뒷받침한다. 다만 이는 한편으로 스웨덴 내 자체 생산 콘텐츠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경험은 훗날 영어를 ‘의미’가 아니라 ‘소리’로 다루는 작곡가들을 만들어냈다. 맥스 마틴이 영어 가사를 발음과 리듬 중심으로 다룰 수 있었던 이유도 이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스웨덴식 작곡 시스템은 개인의 영감에 의존하지 않았다. 곡은 혼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설계하는 것이었다. 실패의 이유와 청자의 이탈 지점을 분석했다. 히트곡은 우연이 아닌 공정의 결과로 취급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스트리트 보이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NSYNC 같은 글로벌 히트가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스웨덴 작곡가들이 전면에 올라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스타가 되기보다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선택했고, 곡은 전 세계를 순환하며 저작권 수익은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그 결과 아시아 지역 로열티는 2018년 이후 세 배로 늘었고, K-pop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같은 기간 약 10배(1,000%)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STIM(Svenska Tonsättares Internationella Musikbyrå , 스웨덴 공연권 협회)의 CEO 린나 헤이만은 음악 산업을 '경기 변동이나 관세,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의존도가 낮으면서 국가 브랜드와 소프트 파워를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 자산'으로 규정한다. BTS와 블랙핑크의 사례만 보아도 브랜드를 키우는 데 있어 음악만큼 강력한 수단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부심, K-pop은 어떤 역사를 거쳐왔을까.
전주만 들어도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북반구의 어느 침엽수 숲으로 바뀌고 엘프들이 휘파람을 불며 등장할 것 같은 환영을 불러오는 이 노래의 원곡은 핀란드 그룹 Nylon Beat의 'Like a fool' 이다. 당시로서는 꽤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해외 곡을 단순히 참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곡의 구조와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한국어 가사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인지 뮤직비디오 역시 현실과 환영이 뒤섞인 몽환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외계인을 만나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함께 노래하는 장면도 나온다.(*2)
이 시점의 선택은 아직 ‘협업’이라기보다는 ‘수입’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다. SM은 일찌감치 멜로디의 글로벌 가능성을 읽어냈다. 좋은 멜로디는 국경을 넘는다는 것, 그것만큼은 분명했다. 본격적인 공동 production은 는 2000년대 후반부터다. 동방신기 <Mirotic>(2008), 소녀시대 <Genie>(2009), <The Boy>(2011), SHINee <Lucifer>(2010) 같은 곡들은 유럽과 미국 작곡가의 데모를 출발점으로 삼고 한국 A&R(Artists&Repertoire)팀이 아티스트의 캐릭터, 안무, 그리고 가사를 한국어 운율에 맞게 구조와 파트를 재설계하는 프로세스로 완성됐다. 이 시기부터 송 캠프(song camp) 방식(*3)이 도입,확산되기 시작한다.
여러 국적의 작곡가와 프로듀서,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트랙(반주) 위에 멜로디와 가사의 핵심 훅(hook)을 만들어내는 탑라이너(topliner)들이 짧은 기간 동안 팀을 바꿔 가며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수십, 수백 개의 데모 곡을 생산하는 방식이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SM은 이를 2009년경 업계에 비교적 이르게 도입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방식은 정식 제작 체계로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해외 작곡가들은 더 이상 단순한 외주 공급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K‑pop 제작 시스템 내부로 편입된 하나의 ‘참여자’가 되었다. 그리고 A&R이 음악을 둘러싼 요소 전반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개별 요소의 역할 또한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했다. 가사 역시 이 변화의 중심에 놓였다.
1980–90년대 한국 대중가요에서 가사는 하나의 소설이었다. 도입과 전개, 사건과 결말이 있었고, 노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였다. 하지만 아이돌 시스템 이후, 음악은 더 이상 귀로만 소비되지 않았다. 퍼포먼스와 이미지, 영상과 세계관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듣는 노래에서 보는 노래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가사는 설명해야 할 텍스트가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의미가 없는 문장, 반복되는 음절,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사들은 성의 없음이 아니라 역할의 이동이었다. 설명은 이미지와 퍼포먼스가 맡고, 가사는 에너지와 리듬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4)
팝송을 부르던 스타들을 좋아했던 나의 마음은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게 만들었고, 결국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취향은 그렇게 구조로 이동했다. 팝송은 내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자, 나아가 문화와 산업을 읽는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덕질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그 세계의 설계도를 이해하고 싶어지는 마음으로 자라났다.
그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그리고 꽤 먼 길을 돌아서.
Crumbs
(*1)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팝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어린 시절 스웨덴의 공교육 음악 교육 제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훗날 “내가 이룬 모든 것에 공공 음악 교육이 큰 공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 사실 아래 가사는 원곡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이 부분이 추가됨으로써 곡은 한층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3) 자유로운 창작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문화예술 산업에 마치 대기업의 합숙 훈련을 연상시키는 시스템이 도입된 셈이지만 이질적인 결합은 오히려 다른 차원의 혁신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캠프에서 만들어진 곡들은 완성품으로 바로 사용되지 않는다. 구조는 다시 짜이고 후렴은 새로 쓰이며 안무와 콘셉트에 맞게 재조정된다. 집단적 생산과 개인적 창작이 교차하는 이 과정은 효율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결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공정에 가깝다.
(*4) 어른들이 “요즘 노래는 가사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안 들린다”고 말하던 의미를 이제는 이해하게 된다.
그 말은 단순한 세대 차이나 노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사가 더 이상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어’로 기능하지 않게 된 변화에 대한 반응을 그렇게 표현한 것에 가깝다.다만 소리와 리듬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아무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이 오히려 곡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