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아픈 정우, 깐깐 쟁이 해연, 구경꾼 호운, 하윤, 대명
심폐소생술 경연대회는 심폐소생술 경연자의 심폐소생술의 정확한 시연도 중요하지만 심사위원의 눈길을 얼마나 끌 수 있고,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느냐가 주요했다.
심폐소생술이야 해연이가 전문가였고, 경연대회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연하게 될 하윤과 대명도 나의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나의 걱정거리는 단막극이었다.
8~10분 정도의 단막극, 필요한 소품부터 의상 등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가 준비해야 했고, 가장 어려운 일은 단막극을 구상하고 대본을 쓰는 것이었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한다지만, 나는 공문이나 보고서 등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도, 그렇다고 내가 쓴 공문이나 보고서를 내 윗사람들이 살펴보며, 잘못되었다, 부족하다 이야기한 적도 없을 정도로 글을 쓴다는 것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 단막극 대본은 경우가 달랐다. 공문이나 보고서와 같이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해연이가 뜬금없이 저질러버린 일이라 나의 계획표에 전혀 없던 정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단막극 대본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해연이가 나에게 내어준 또 다른 숙제가 단막극 대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네가 선배이니 적당히 핑계를 둘러대고 안된다고 하지 그랬어라고 했지만, 해연이, 하윤이, 대명이는 심폐소생술 시연 준비를, 호운이는 소품과 무대 의상을 준비하느라 그네들도 시간이 빠듯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내가 해연이에게 해 준 약속이 있다.
아, 정말 해연이에게 약속을 해준 당시의 나를 쥐어박아주고 싶다. 정말 가능하다면...... 흑흑흑
야간 근무의 특성상 야간에는 내 역할을 했어야 했고, 퇴근 후 잠을 줄여가면서 단막극 대본을 작성했다.
며칠 후 드디어 단막극 대본을 완성하고 해연과 호운 그리고 하윤과 대명의 의견을 듣는 날이 되었다.
"참, 짜임새 있는 대본인 것 같고, 우리 회시가 하는 일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해연이의 짧은 소감이었다.
호운 그리고 하윤과 대명도 좋은 내용인 것 같다며 반겨주었다.
단막극 대본을 쓴다고 근무 후 3일간을 잠을 줄여가며 대본을 썼었다. 그것이 화근이 된 것일까, 경연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몸살이 와버렸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파왔다.
해연이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녀석, 역시 오래비를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구나"라고 해연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웃으면서 "당연하죠, 그런데 목소리는 나오시죠?"라고 묻는다.
무섭다. "왜?"라고 되물었더니 녀석이 또 다른 엄청난 숙제를 가지고 왔다.
"대본에 해설이 쓰여있던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금 다들 역할이 있으신데, 혼자 역할이 없으시다는 건 알고 있으시죠?"이쯤 되니 녀석이 정말 무섭다."해연아, 오래비가 몸살이 심해서 좀 봐주면 안 될까?"좀 모양이 빠져 보이지만 선처를 구해보았다. 녀석은 냉정했고, 내가 한 약속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았어, 목소리는 나오니까 해설 내가 할게"대본도 내가 해설도 내가, 아 녀석의 계획에 제대로 당했다.
녀석은 이제 연출까지 하라고 했다. 대본도 쓰고 해설도 맡으셨으니 연출도 하는 게 맞다고 한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뒤돌아섰다. 아~녀석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단, 그날은 해연의 호의로 연습에서 빠졌다. 대본 쓰느라 고생하셨으니 하루 일찍 퇴근하여 푹 쉬란다.
참,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격이다.
내가 이렇게 해연이에게 꼼짝 못 하고 있는데 호운, 하윤, 대명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짜식들 기다려라 오늘의 복수는 언젠가는 꼭 해주고 말리라!
반드시 오늘을 후회하게 해 줄 테다.
수백 번을 다짐하며,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