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전야는 고요했다. 누구 하나 뒤이은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경기 풍산 어느 강연장에서 우수사례 발표가 있었다.
발표 시간이 오후 시간대여서 근처에서 호운과 점심을 해결하고 발표 장소로 들어갔다. 알고 지내던 몇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안전보건공단 관계자, 고용노동부 경기 풍산지청 관계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한치 건너 두치라, 한 번쯤 인사를 나눈 적은 있었었다. 서둘러 도착해서 그런지 발표 장소가 꽤 규모가 있었음에도 참석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보였다. 흠... 그리 긴장할 필요는 없겠군, 자리에 앉아 발표자료를 살피며, 다른 발표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되었다.
발표자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어 단상에 올랐더니 앗! 어느새 참석자들로 빈틈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터라 그리 긴장은 되지 않았지만 참석자가 이리 많을 줄이야......
발표자는 모두 세명이었고 나는 두 번째였다. 첫 발표도 아니고 마무리 발표도 아니었기에 나쁘지 않은 순서라 생각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의 발표 순서다. 발표 주제는 지게차 재해 예방 활동 사례였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실행단계까지 내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기에 발표나 질의응답이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질의응답 중 좋은 질문들은 생각의 전환이 되었고 나에게는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발표를 모두 마치고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호운이 와도 헤어졌다. 평상시 같았다면 저녁을 함께 하고 헤어졌겠지만 당시의 나는 하루에 고작 두세 시간 잠을 자고도 굉장히 많이 잤다고 위안을 삼고 있던 시기였다.
간략하게 발표 결과를 헌철에게 보고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미뤄왔던 건강증진우수사업장 심사준비를 위하여 해연이와 진척 사항을 점검하고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또 한 번 요란스럽게 나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어 이제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건강증진우수사업장 심사관련해서는 해연이가 담당자들과 조율하고 있고 경기 풍산지청은 발표회가 끝나고 간략히 인사를 나누고 특별한 일은 없었을 때다.
누구일까,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경기 풍산지청에 강희 감독관이다. "안녕하세요 정우님, 경기 풍산지청에 강희 감독관입니다." "예, 감독관님 안녕하세요?" "예, 정우님 다름이 아니라 금번 여름 물류센터 실태조사를 위하여 지청장님께서 정우님 사업장을 방문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아뿔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예, 저도 사업장 책임자에게 보고를 드려야 하고, 지청장님 방문이시면 아마 저희 담당 임원분까지 보고 드려야 하는 사안이라서요. 제가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라며 확인 후 연락드리겠다는 이야기로 갈무리하였다.
아! 우수사례 발표에서 사업장 방문까지 오늘의 후폭풍을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다급히 헌철에게 보고하고 본사 유관 부서에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였다. 우리 사업장은 사내 보안등급이 최우수 등급인 사업장이다. 물론 관할 지청장의 방문을 막을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지만 관련 사항의 보고와 공유는 필수불가결 하였다. 더군다나 당시 타 물류회사에서 더위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여 한참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관할 지청장의 방문이라니......
계획된 방문일정이 촉박하여 이번에는 해연이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했다. 미안하지만 어찌하리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호운, 해연 모두 대형 사업장의 실무자로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던 터였기에 준비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방문 전날 헌철, 나, 호운, 해연 우리 네 명은 사전 계획해 두었던 동선을 확인하고 미진한 준비사항을 독려했다.
방문 당일 헌철, 나 호운, 해연 등은 풍산 지청장을 직접 맞았고 사업장 주요 현황과 그동안의 안전보건활동과 성과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이어진 현장 투어, 지청장은 감탄사를 연이어 쏟아내었다.
"한국물류가 괜시리 물류 일등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군요. 하나하나 절차에 맞추어 운영되는 모습들이 실로 놀랍습니다."라며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고 물류센터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며 새삼 놀라운 표정이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음에도 지청장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헌철이 지청장을 수행하며, 대응하였다. 지청장은 현장 투어를 마치고 사업장 요소요소에 많은 고민과 노력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으며, 많은 분들의 노고가 모여,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사업장임에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연신하며, 방문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또 한 번의 큰 산을 넘었고 나도, 호운이도, 해연이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