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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던 사람이

by 박가을




어제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던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들것에 실려 하얀 천으로 덮인 채

내 앞을 지나 중환자실에서 빠져나갔다.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은 죽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매일 아침 마주한 광경이었다.


생(生)과 사(死)는 한 끗 차이였다.


마치 중환자실은

생명과 죽음 사이에 있는

환승역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살아왔다.


죽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뒤로

죽음은 누구에게나 늘 가까이에 있음을

자각했다.


죽음을 분명하게 마주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자 세상과 인생에 대한 불안함도

없어졌다.


사람마다 인생이 두려운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촉발한다.


죽음을 뚜렷하게 인식할수록

오히려 살아있음을 강렬히 느꼈다.


전보다 삶의 의지가 강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타인과 세상이 세뇌시킨 가치관에서는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삶의 궁극적 이유와 목적은

‘내면의 성장과 영혼의 완성’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책<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났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선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으로 죽는 것,

또한 살아가는 동안

좋은 생각과 행동에 힘쓰고

부지런히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생의 기점보다 종점에서 영혼의 품격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게 하는 것,

그 외에 자연과 우주가 우리에게

생을 내려준 목적은 없다.”


우리가 지구에 온 이유는

내면과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해서다.


인생이라는 시간은 더 나은 나로

변화하라는 뜻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마음 상태로

가꾸어 놓고 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연도 끊임없이 진화하며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간다.


우주에는 두 가지 본연의 성질이

내재한다.


첫째, 한순간도 정체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발전시키려는 의지


둘째, 만물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힘


이러한 우주의 에너지 흐름에

나의 에너지를 맞추면 인생은 자연스럽게

긍정적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에 대한 통제권은

오직 올바른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선택하여

꾸준히 실천하는 데에 있다.


우주의 의도에 따라 행동한다면,

나머지는 우주의 섭리가 알아서

이끌어 줄 것이다.


마음을 수양하고 영혼을 연마하는 일은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에

달렸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과 마주치는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대할 것인가.


영혼의 완성을 위한 훌륭한 공부 거리는

나의 모든 생활 속에 있다.


마음과 정신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장소는

한적한 산속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일상 그 자체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친다는 것은

현재를 영원으로 바꿀 기회를

놓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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