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P.1 소고기 카르파치오 파마산 타르틴

프랑스 요리에 푹 빠진 나_프랑스 오픈 샌드위치 타르틴

by 흩날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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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를 너무도 사랑한다.

다해봐야 겨우 1년 남짓한 실력이겠으나 프랑스어를 5년 가까이 곁에 두고 있고,

퇴근 후 프랑스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는 게 낙이며,

프랑스 대학을 나온 남자친구에게 가끔 프랑스어로 대화를 시도하다 퇴짜 맞기도 하고,

지킨 적은 손에 꼽지만 매달 17일을 '프렌치 데이'로 지정해 프랑스에 사는 척 흉내 내 보기도 하고,

주말에 카페에서 디저트와 차를 시켜놓고 챗지피티와 프랑스에 온 듯 롤플레잉을 하며 언어를 배우고,

퇴근할 때는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쉬운 프랑스어 팟캐스트를 들으며,

언젠가는 프랑스에서 살 거라며 입버릇처럼, 아니 확언에 가까운 자기 암시를 퍼붓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프랑스를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프랑스인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예전에 홧김에 수강 신청을 했던 전화 프랑스어 선생님과의 대화가 전부였다.

그것도 한국 대학교를 다니는 서울살이 프랑스인과.


그게 어쩌면,

프랑스에 대한 미지의 환상을 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울 그런 환상을.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든, 미화이든,

나는 프랑스의 낭만을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살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나의 프랑스 짝사랑은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아니었다.

내게는 '파리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첫 시작이었다.

영화를 본 그 순간부터 나는,

어쩌면 그곳에 가보기 전까지 이 애절한 짝사랑이 끝나지 않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양한 식재료, 맛, 음식 문화, 요리, 맛의 언어에 사로잡혔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산더미처럼 쌓인 온갖 형태의 치즈의 맛은 어떨까?

나도 가지각색의 초콜릿 디저트를 양껏 맛보고 싶다.

저 트러플은 어떨까?

저 소시송은?


짝사랑은 불길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열망하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어,

되려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커버린 아이 같은 어른처럼,

평생 아름답게 치장된 꿈만을 품고 산다.


가까이 닿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으나,

손끝조차 닿을, 아니 가까이에는 있는 건지, 얼마나 먼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사랑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데,

쏟아낼 곳 없이 팽창하기만 했다.


더는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기다림이 주는 무력감에 도취되겠구나,

내게 평생 이루지 못한 한이 생기겠구나,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나는 서울에서 프랑스를 살아보겠다고.

그들의 문화를 우리 집으로, 나의 일상 속으로 한번 옮겨와 보겠다고.


그렇게 나의 첫 프랑스 요리 챌린지,

그 첫 서막, '프랑스 오픈 샌드위치 타르틴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책 표지.HEIC
프랑스 오픈 샌드위치 타르틴
저자: 사브리나 포다 롤(지음), 배혜정(옮김)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직관적인 사진 때문이었다.

어쩐지 나는 예전부터 글이 빼곡히 쓰여 있는 레시피를 보는 게 싫었다.

뭐가 몇 그람이고, 순서가 어떻고, 하는 것들을 볼 때면,

괜스레 머리가 지끈거렸고,

요리를 하기도 전에 싫증이 나버려,

라면을 끓이곤 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퇴근 후에 소진된 나의 체력을 핑계로,

복잡한 요리 따위는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물론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귀찮았고,

음식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각종 벌레들은 더욱 싫었다.

그런 나에게 이 요리책은 너무나도 적합했다.


직관적인 구성.

왼쪽은 요리 재료 사진과 재료의 이름들,

오른쪽은 완성된 타르틴의 사진과 간단한 요리 순서가 적혀 있다.


마치 사진 속으로 손을 뻗으면,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따올 수 있을 듯,

보기만 해도 이미 눈과 입이 즐거움을 아는 요리책이었다.


올해,

나의 목표는,

다양한 맛의 지평을 넓혀 보겠다,

일 년을 바게트로 풍성히 채워 보겠다,

매월 기대하는 마음으로 제철 식재료가 듬뿍 들어간 타르틴을 한입 베어 물겠다,

한국의 맛이 짙은 서울에서 프랑스를 살아보겠다, 로 정했다.


프랑스인이 펴낸 책이라,

적절한 재료, 동일한 맛을 낼 수는 없겠지만,

나만의 프랑스를 구워 보려 한다.




재료.HEIC
소고기 카르파치오 파마산 타르틴
CARPACCIO, CÂPRES & PARMESAN


재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먼저 바게트.

남자친구와 문래동에 데이트를 나간 김에 좋은 바게트를 한 번 구해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베이커리를 돌아다녔으나,

나의 오만이었다.

늦은 3시경 바게트가 남아있을 리 만무했으며,

바게트 자체를 한국인들이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다.


결국 나는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온 동네 근처 빵집에서,

정말 누구나 볼 수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바게트를 손에 넣었다.

다음번에는 성수동에 있다는 유명한 바게트 집을 가봐야지, 하며.

이번 타르틴 챌린지를 하며 기대가 되는 것 중에 하나도,

다양한 종류의 바게트를 찾아다니며,

바게트의 고소함의 극치를 맛보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했다.


다음, 카르파치오.

프랑스에서야,

"카르파치오 소고기 주세요"하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한국에서 카르파치오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정육점에 가도 뭘 달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평소 요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나였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결국 나는 시장으로 향헀다.

이곳저곳 정육점에 들려,

"생으로 먹을 건데, 소고기구요, 아주 얇게 썰은, 그런 거 없을까요?" 라며,

누가 봐도 정육점 처음 온 티를 팍팍 내는 바보 같은 말만 늘어놓았고,

정육점 사장님들은 이상한 눈을 한 채,

"소고기는 원래 생으로 먹어요" 했다.


안심과 채끝 중에 고민하던 나는,

안심이 좀 더 맛있다는 그 달콤한 유혹에,

정육점 사장님이 맛보라고 잘라주는 소고기를 난생처음 꺼림칙한 표정으로 받아 씹으며,

생각보다 고소하잖아,

내심 놀라면서,

뭣도 모르고,

덜컥 안심으로 180그람을 잘라 달라고 했다.

최대한 얇게 썰어달라고 당부하면서.

36,000원의 가격 폭탄을 맞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한우였구나..."

원산지를 체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영수증을 들고 벙쪄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남자친구는 "타르틴은 원래 가볍게 먹는데, 우리, 고급 타르틴을 먹네"하며,

어이없는 웃음으로 위로했다.


나는 잘려나간 통장 잔고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그래, 처음 만들어 보는 거니까 그럴 수 있지,

처음이니까 이 정도 사치는 괜찮아, 하며

애써 줄어버린 마음을 잡아 늘렸다.

다음에는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쓰겠다, 다짐하면서.


그다음, 파마산.

처음엔 피자헛에 가면 테이블 위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차지한,

녹색 원통에 담긴 가루 파마산을 살까 고민했다.

그러다, 아니야,

기왕 하는 거 하라는 대로 제대로 해보자 싶어,

쿠팡으로 고체 파마산을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배송으로 온 파마산을 열어보니,

웬걸, 수량을 잘 못 체크해,

두 개나 시켜버렸다.

누가 칠칠이 아니랄까 봐,

혼자되네이며,

다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타르틴 챌린지를 끝까지 해야겠구나,

처량한 다짐을 받아냈다.


두 개나 생긴 파마산 치즈를 오래 먹어야 했으므로,

유산지로 잘 싸서 냉장보관하면 일 년은 족히 먹는다는 네이버의 말에,

다이소에서 유산지와 비닐팩, 그리고 치즈 그라인더를 구매해,

파마산 잠옷을 입혔다.


마지막, 올리브유, 케이퍼, 레몬즙, 통후추.

비싼 소고기로 눈탱이 밤탱이를 맞았으니,

올리브유는 자기가 사 오겠다던 남자친구는,

비싸고 좋은 올리브유와 레몬 한 덩이를 마트에서 사 왔다.

혹시 망하면 배를 채울 떨이 스시를 몰래 담아 오고선, 멋쩍게 웃었다.

케이퍼와 통후추(그라인더용)는 쿠팡에서 미리 주문했다. 최대한 좋아 보이나 역시 싼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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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생각 외로 간단했다.


나무 도마 위에,

유산지를 깔고,

바게트를 올리고,

올리브유를 빵에 뿌려주었다.


남자친구는 넓고 얇게 저며진 소고기가 내심 맘에 안 들었는지,

육회처럼 잘라보는 게 어떻겠냐 했고,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남자친구가 소고기를 잘게 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넓은 유리볼에 잘린 소고기들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생각보다 소금과 후추를 많이 넣어야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맛을 본 이후였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버무린 소고기를 빵 위에 올리고,

열심히 파마산을 갈아냈다.

눈처럼 소복이 쌓인 파마산 치즈 위에,

케이퍼를 듬뿍 올렸다.

그리고 레몬을 반 잘라내어 즙으로 데미를 장식했다.




맛은 육회와는 정말 달랐다.

간이 조금 덜 되어 밍밍한 소고기 맛에,

치즈의 녹진한 맛이,

어쩐지 낯설었다.


케이퍼의 시큼함이,

이런 게 요리사의 의도된 맛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케이퍼가 없었다면,

어쩌면 본연의 맛일 수밖에 없을,

진한 육향만이 맴돌았을 타르틴에 아쉬웠을지 모른다.


예전에 소고기 타르타르(tartare)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육회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당신에게,

색다른 풍미의 존재를 알고자 한다면,

감히 도전해 보라던.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육향과 치즈의 나른한 고소함 사이로,

게을러진 혀를 단숨에 긴장시키는 시큼함.


난생처음 받아들인 맛은,

학창 시절 단짝을 10년 만에 처음 보는 것처럼,

익숙한 듯 불편한,

그러면서도 새로이 발견된 모습에 놀라는,

낯선 맛이었다.


어쩐지,

상상할 수 없는 조합과 맛에,

페이지를 후다닥 넘겨버리기 바빴던 나의 부족한 용기를,

조금은 붙잡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경솔한 희망이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간 것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느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