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제주도의 첫인상은 순리와 흐름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다음의 행보를 놓고 기도하다,
제주도에 공고가 난 것을 발견했다.
당시 나는,
난민 아이를 입양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글을 쓰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나의 머릿속에는,
바닷가와 돌담,
그 광경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나의 행복이 담겼다.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제주도에서의 삶은 어쩐지,
운명같이 느껴졌다.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여,
지원을 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룸메이트 언니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남다른 크기와 참석한 인파,
그들이 자아내는 압도에,
약간은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졸업연사가 강단으로 나왔고,
강단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기에,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동양의 작은 외형을 가진 여성임은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졸업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
나는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일제히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제주 토박이였다.
자신이 얼마나 제주를 사랑했는지,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영상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 열정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나는 그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제주도에 가게 되겠구나,
확신했다.
이변은 없었고,
나의 제주행은 확정되었다.
나는 친한 언니와 함께,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뉴욕을 채 내려놓지는 못했으나,
가슴 한켠에 아린 그리움을 재워놓고,
홀로 차분히,
뉴욕을 정리해 나갔다.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나는 미국에 있던 터라,
부모님이 대신해서 집을 알아봐 주셨고,
운이 좋게도,
처음 방문한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감귤밭이 보이는,
오피스텔을 단번에 구해주셨다.
신기하게도,
처음 제주도로 이사하는 날,
아침 뉴스에서는,
제주도 해녀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확신했다.
이곳은 내가 와야만 했던 길이고,
나는 순리대로 가고 있다고.
나를 위한 제3막이라고.
그러나,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제주도가 지긋지긋했다.
매일 밤,
죽음을 생각했고,
만일 내가 죽는다 해도,
내가 죽음에 다다르는 그 순간조차,
나는 철저히 버려진,
고독이겠구나,
생각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
"포기하지 마!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마, 노라 시드!"
'나는 살아 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
고등학교 시절 이후,
아니 어쩌면 정확히는 중학교 시절 이후,
나는 소설과 문학 모두를 잊었다.
그것은 이미,
내게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교 전공 공부를 하느라,
일본어를 배우느라,
영어를 배우느라,
유학 준비를 하느라,
로스쿨 시험 준비를 하느라,
돈을 버느라,
문학은 나의 관심사 저편에 자리했다.
아니, 오히려 가리워져 있었다.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돈도 없어 소비로 시간을 때우지도 못한 채,
철저히 혼자가 된 미국에서,
할 것이라고는 생각과 창조뿐이었던 철저한 고독에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고 여겼던 제주에서,
회사 상사의 태움에,
퇴근하고 오피스텔 복도에 들어서면,
눈물이 터졌던 그때,
제주도의 자연이 끔찍한 조형물로 보였던 그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나를 죽여달라고 울부짖으며,
일상의 악몽을 견뎌냈던 나는,
결국 2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겠다 다짐하고,
다음 살길을 찾아 헤매다 서점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문학 번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통번역 대학원을 가서,
문학 번역을 하며,
홀로 일하는 직업을 찾겠노라,
이 징그러운 제주도를 떠나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약 10년 만에 집어든 문학 책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였다.
내용도 몰랐고,
그저 판타지 소설인 줄만 알았다.
그때 나는 번역을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내용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상황과 너무도 일치했다.
넘어져 부딪히고 깨진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번역이 과연 답일까,
나는 실패한 채 제주도를 떠나는 것인가,
내게 과연 밝은 미래가 있을까,
나는 끝없이 의문을 제기했고,
미로에 빠졌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던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가능성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은 마치,
내가 헤매이고 울부짖던 순간에는,
대답도 않던 운명이,
삶에 지쳐 벼랑 끝에 도달한 발을 내려다보는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내가 바로 이 순간에 도달해야 했다고,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해야만 했던 거라고,
운명은 그렇게 속삭였다.
그 순간부터,
책을 읽는 행위는 내게 기도가 되었다.
나는 예배를 하듯 책을 읽었고,
내가 얻어야 하는,
얻을 수밖에 없는 지혜를 찾아,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럴수록 정말 소름이 끼칠 만큼,
책은 연금술사에서 말하는 "표지"가 되어,
나의 삶, 바로 그 순간에,
내게 가장 필요한 지혜를 숨겨놓았다.
나는 나를 앞서 걸어갔던,
수많은 이들의 머릿속을 훑으며,
그들과 공생하며,
운명이 시기 적절히 물어다 주는 지혜를 꼭꼭 씹으며,
나의 인생과 눈을 맞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제주도를 떠나지 않았다.
제주도 파도처럼,
끝없이 불어닥치는 기적과 치유 속에,
나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나아갔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그것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지혜와 진리, 그 총체의 집합이었다.
나는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허황되고 쓸모없는,
죽어있는 말이 아닌,
나의 인생의 은사로,
때에 맞추어 내가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는,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서 문학을 맞이했다.
나는 이제 더는 고통이 들어찬 인간의 일생을,
구질구질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의 인생은,
버겁고,
때로는 도망쳐 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으나,
그들의 고귀함이 처절하게도 아름다운,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남산 도서관 작가교실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처절하게 나를 도려내야만."
나는 수 십 년간,
나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인간의 본능을,
고통의 실체를,
세상의 허상을,
인생의 고독과 허무를,
도려냈다.
도려낸 것을,
이제는 내보일 줄 알았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