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나를 처절하게 도려낸다면,

첫번째 이야기

by 이너위키InnerWeaki

어릴 적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자신은 채 누리지 못했던,

교육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더랬다.

옆집 엄마, 아는 친구, 방문 교육 선생님 가릴 것 없이,

교육 좀 안다는 사람이면 서슴지 않고 찾아갔다.


어느 날,

엄마는 고전소설 전집으로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 덕에 어릴 적 나의 친구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였다.

물론 과학서적부터 역사책, 백과사전 등등,

숱한 책들을 읽었겠지만,

나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이 자리 잡은 것은,

두 소설이었다.


왜 그 소설들이 유독 기억에 남았을까 생각해 보면,

딱히 이유는 없었다.

선녀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몽롱했고,

난생처음 꿈꾸는 환상의 세계가 그리웠고,

그저 사람들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이야기는 내 사고의,

나의 삶의 방향성의,

나의 말하는 방식의 전부가 되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나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

오로지 상상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혼자를 택했다.


등교를 하거나,

하교를 하거나,

비로소 혼자가 될 때,

나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골목길을 힘차게 뛰어 내려갈 때면,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기도 했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토토로의 메이가 되어 우거진 숲을 탐험했다.

모든 것은 생생히 눈앞에 살아 움직였다.


청소년 때에는,

드라마란 드라마는 모두 섭렵할 정도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좋았다.

사랑, 꿈, 조선시대, 요리, 여행, 슬픔, 가족,

이야기란 이야기를,

모조리 먹어치웠다.


난생처음 갖게 된 아이리버에는,

각종 소설들을 가득 다운 받아 쉼 없이 읽었고,

다른 친구들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할 때,

나는 소설을 밤새워 읽었다.


심지어는 고3 수험생 시절,

깊다 못해 어두웠던 내 마음을 붙일 친구조차 없었던 그 시절,

이유도 꿈도 없이 마냥 시키는 대로 떠밀려 갈 뿐인 그때,

유일하게 숨 쉴 구멍을 찾아 향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부모님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

화장실 바닥에 수건을 한 장 깔아놓고,

숨죽여 드라마를 봤더랬다.


물론 그때,

나의 이야기 소비에 방향성은 없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편식이 허락되지 않듯,

그때의 나는 이야기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어쩌면 그때 넘긴 모든 이야기들이,

잘게 쪼개져 나의 양분이 되었던 것일까.


돌이켜 볼수록,

토해내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이 답답함은,

그때 쌓였던 이야기들이,

어느샌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평생 이야기를 읽고 소비해야 하는,

이야기로 세상을,

그리고 나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을 삼켰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이 처음 등단하게 될 때는,

나의 어두운 내면, 숨기고픈 치부를 꺼내 드러낼 때,

고통을 직면할 때,

그때가 비로소 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될 때일 겁니다.


- 이름 모를 남산 도서관 작가교실 선생님 -




나는 중학교 시절,

소설을 쓰는 데 흠뻑 빠져 있었다.

공부도, 미술도,

게임을 제외한 그 무엇도 재미가 없었던 그때,

오직 소설만이 밤을 새울만큼,

한강 작가님의 말을 빌려,

'소설을 굴릴 때'면,

새벽이 가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나는 소설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는 인터넷 카페에 단편 소설을 연재하곤 했다.

여러 주제의 소설을 연재했는데,

당시의 나는,

어떤 노래를 듣고서 영감이란 것에 심취해,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중 한 소설은 원조교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깊이 생각을 하고 썼다기보다는,

그저 치기 어린 시절의 일탈처럼,

금단의 사랑을 써보고 싶었다.


물론 중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손만 잡으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던 나는,

소설의 베드신을 손을 잡는 것으로 끝낼 정도로,

성적인 부분을 잘 알지 못했기에,

그저 아가페적인 사랑을 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썼던 소설이,

생각지도 못한 많은 찬사를 받았다.

물론 원조교제를 다루었다는 것에 혼도 났지만,

대다수는 이야기 전개나 문체가 훌륭하다는,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그 황홀경의 잔상을 잊지 못했던 나는,

학교 공지판에 붙은,

남산 도서관 작가교실을 모집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지원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작가가 아닐까,

유일하게 밤을 새워도 살아있는 이 생의 감각이,

어떤 신호가 아닐까,

기대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 수업에 참석한 그날,

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숨기고 싶은 고통스러웠던 가정사,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둡고 음침한 내면,

내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해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것들을 막느라 소진된 기력,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불안과 우울감을,

도려내어,

먹기 좋게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구질구질하고 불쾌했다.


아직 인생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고,

아니, 오히려 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때,

그저 나라는 존재가 버거워,

나를 알아가는 것조차 힘겨웠던 그때,

나는 밝은 것만 보기로 결심했다.

밝고 환하고 고귀한 생을 위해,

나는 작가를 버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가장 밑바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시간,

나락으로 떨어졌던 미국과 제주도에서,

나는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처절하게 도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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