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순례자, 한 걸음을 내딛다

초예민자로 태어나 세상을 사랑하기까지

by 이너위키InnerWeaki


나는 선택에 기로에 놓였다.

니느웨로 갈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나의 신, 나의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저 땅 끝으로. 멀리.


왜 하필 나인가요.

왜 마음이 단단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아닌,

왜 똑똑하고 스펙이 좋은 저들이 아닌,

왜 걸핏하면 도망치고 싶고,

조금만 힘들어도 삶의 끈을 놓고 싶은,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나인가요.

나는 신에게 울부짖었다.


나는 지금의 업무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업무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보다,

6시 칼퇴근과 회사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도 귀를 닫고 살 수 있는 생활에 만족했다.

그저 난민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자 했다.


물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와 갈등,

사명과 사랑에 동떨어진,

나를 이용하고자 하는 눈에 뻔히 보이는 마음들이,

나를 끝없이 괴롭혔지만,

그저 귀를 닫으면 그만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돈도 많이 벌고 더 좋은 자리로 승진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나는 어쩐지 그곳이 니느웨 같았다.


굳이 가야 할까?

지금 자리에서 만족하며 일하면 되지 않을까?

나의 평안과 행복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고자 했다.


그때,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이런 때에 네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난민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마침내는 구원을 받고 살아날 것이지만,

너는 내 앞에서, 그리고 그들 앞에서 떳떳하겠느냐?

네가 이처럼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를 누가 아느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고요한 모략과 미움에 질려버려,

또다시 달아나고자 한 내게 그는 말하셨다.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기꺼워하며 노력하여 얻지도 않았고,

그저 누군가가 지나가듯 알려준 한 마디에 지원한 이 자리를,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너의 동료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난민들이 찾아오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나는 결국 그의 끝없는 회유와,

그의 끝없는 달콤하고도 정직한 세뇌와,

그의 간절한 호소에,

뻔히 보이는 미래의 암흑 속으로,

다만 있을 거라고 말하나 결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을 상상하며,

앞으로,

다만 힘겨운 한 걸음까지만,

내디뎌 보기로 했다.




내 마음의 한쪽은 너무 덥고 메마르며,

또 다른 한쪽은 새하얀 눈에 휘덮여,

그 열기와 한기를 한 곳에 모아서,

온화한 자신이 되려 애써도,

난 웃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그는 새벽 일찍 길을 나섰대.


그 누구보다 먼저 길을 나서는 이여,

눈먼 어둠 속에서 숨어있던 별들과,

대지 위의 짐승과 대기 속의 새들이,

나그네의 앞길을 축복하네.


제 그림자를 업고서,

길을 떠나던 그가 어린 내게 이르길,

'삶을 이해하려 들지 말게. 결코 알 수 없을 테니.

사람의 마음은 결국 참아내나니.'

'삶이 네게 주는 것을 받게. 걸어갈 채비를 하게.

아침이 열리고 세상이 깨기 전에.'


다시 길 위로,

뜨거운 숨을 내쉬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일어나, 모질게 다시 가야 해.

길 위로.


이제 노래하지 마.

더는 꿈을 꾸지 마.

삶이 흉터를 통해서 말해.

허나 무엇으로 내 타는 속을 마취할까.


아무 기대하지 마.

너를 드러내지 마.

그런 나락은 바닥이 없어.

나는 피어오르리, 내 눈앞의 절벽을.


다시 길 위로,

뜨거운 숨을 내쉬며.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일어나, 모질게 다시 가야 해.


꿈은 저 멀리 손짓하며 우릴 불러.

절대 잡히지 않는다 해도.

한 번 더.

걸음을 내디뎌야 해.

길 위로.


풀어 헤쳐진 너의 신발 끈을,

또다시 동여 매.


- 심규선, 순례자 -




세상에는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는 이들이,

나의 길 곳곳에 서서,

지친 몸을 위태로이 끌고 오는 나의 팔을 잡고,

나를 부축하며,

나를 걸음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어 나아간다.


공적개발원조(ODA)에 대한 순순한 사랑을 토로하는 남자친구의 고민이,

나의 신앙적 딜레마를 묵묵히 들어주는 인생의 선배인 언니가,

나를 위해 고요한 예배당에서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을 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 말해주는 엄마가,

내가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기자마자 안부를 묻는 나의 목사 언니가,

내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산책하러 가자고 말하는 롤모델인 팀장님이,

먼 땅 미국에서 내가 보고 싶다 말해주는 나의 구원자였던 언니가,

그래도 살아보자며 응원하는 나의 연예인 규선언니가,

내게는 순례의 길을 걸어가도록 부축하는,

나의 힘이자,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사랑들이,

그로부터 왔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기에.

그 사랑이 벅차도록 감사하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나의 인생 여정을 통틀어,

모질게 가보려 한다.

내게 주어진 순례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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