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나를 아는 자존감

초예민자로 태어나 세상을 사랑하기까지

by 이너위키InnerWeaki


내 의지로 교회를 떠나 있었던 나의 이십 대에,

신에게 분노하고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치를 떨던 그 시절,

나는 친구들과 신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당시 불안한 미래와 사랑에 대한 목마름에,

작은 확신이나마 안겨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는 닥치는 대로 동아줄이 될 만한 밧줄을 찾아다녔다.


종종 사주를 보고는 했지만,

신점은 처음이었기에,

그날은 어쩐지 약간 긴장한 채로 카페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카페에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중년 남성이 이미 도착해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반쯤은 얼어붙은 채,

어영부영 그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나름의 예술을 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과 성향, 기질을 비유로 풀어냈다.


당시 사업을 하고 있던 당차고 겁이 없는 나의 친구에게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야생마라고 했고,

언뜻 처음 보기에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여리디 여린 또 다른 나의 친구에게는,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곰이라고 했고,

수동적이고 예민한 성정을 가진 내게는,

탑에 갇힌 공주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듣고,

물론 나의 외형보다는 나의 기질과 성향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어쩐지 '공주'라는 어감이 주는 우쭐함에,

콧대가 조금 솟았더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만으로 29세, 한국 나이로는 31세인 나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공주처럼 도도하게 살려고 했던 나의 이십 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그냥,

내가 나를,

인정하는 거?


저는 제가 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막, 너무 예뻐서, 제가 좋은 것도 아니고,

너무 잘해서 제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나를 아는 만큼,

그냥 나는 요만한 사람인 걸 아니까 실망할 일도 없고.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인정하고,

나를 잘 이해하는 게,

저는 자기애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이후부터,

정말 좀 살기가 많이 편해졌거든요.


-아이유-




이제 막 이십 대에 들어선,

어쩌면 이십 대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이들까지도,

종종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최고야. 나는 공주야. 나는 퀸이야. 내가 제일 이뻐."


그 말을 하면 방송에서는,

그리고 때때로 현실에서조차,

자존감이 높다며 박수를 보내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내게는,

조금 억지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불안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자존감을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 언저리조차 가 닿는 게 벅찼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치,

잠깐의 의식이라도 돌아오면,

달콤했던 꿈이 깨어 버릴까,

안간힘을 쓰며,

이미 사라져 버린 꿈 속으로 돌아가려 애써 눈을 뜨지 않는,

끝없이 최면 속에 나를 가둬두려는,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한,

상처받고 싶지 않아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자존감이란,

나의 외모를 과하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만을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도, 나의 단점도,

지극히 숨기고 싶었던 끔찍했던 나의 결핍마저도,

꺼내어 바로 볼 줄 아는 것,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주가 될 필요도,

왕자가 될 필요도 없는,

그저 이렇게 쌓여져 빚어진,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나의 인생을 가득 채운 숱한 시간과,

노력과 눈물과 기쁨, 그 모든 고통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것.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나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위로하며,

나도 모르게 돋은 가시들이 다른 이들을 찔러도 애써 나를 장미로 보지 않고,

모난 부분들을 다듬고 변해가는 나의 모습에 흡족해하는,

내가 나라는 사람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만족하게 되는 그 과정이,

자존감을 향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

주변의 동생들이나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조차,

진짜 자존감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는,

기시감을 느낄 때가 있다.


이십 대, 치열하게 방황하며 울부짖었던 작은 공주가,

탑에 갇혀, 그저 창문 너머만을 바라볼 뿐,

진짜 자신의 모습은 알지 못했던,

슬픈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내가 좋아하는 일, 잘 맞는 사람 유형,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행복함을 느낄 때, 나의 단점과 나의 결핍 등을 찾으려 죽을힘을 다해 보았기에,

그래서 이제는 나를 꽤나 잘 알고 있다고 느끼기에,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충만하고 행복한 만족감을,

지금도 헤매고 있을 이들이 꼭 느껴보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심리학에서 에너지 충전의 공식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뭘 할 때 행복하고, 뭘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간은 약이라는 말처럼,

마냥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종의 저속 충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건 급속 충전에 가깝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면,

행복한 시간은 그야말로 명약이니까요.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최재훈 지음 -




우리 엄마는 일찍 결혼을 했다.

남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남자친구랑 여행을 다닐 때,

우리 엄마는 나를 태운 유모차를 끌었다.


친구들이 우는 아기를, 나를 달래던 엄마를 성가셔하며 핀잔을 줄 때,

엄마는 속이 상해 분을 내면서도,

자신만을 세상의 전부인양 바라보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을 위해,

우는 아기와 함께 울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엄마는 젊었던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온통 나에게 바치고는,

이제야 세상에 나와 걷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가보고,

엄마는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조우했다.


그러다 최근,

하던 알바를 그만두고 집에서 심심해하는 엄마에게,

다이소에서 파는 아크릴 물감과 나무 도마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생전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그림이라고는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그렸던 게 전부인,

성인이 되고부터는 그저 사는 게 바빴던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꽃을 그리는 게 좋다며,

꽃 잎 하나하나 색이 다른 걸 아냐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빛에 반사되는 색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모른다며,

엄마는 소녀처럼 신이 났다.


나는 엄마에게 꽃 그림책을 사다 주기 시작했고,

생전 꽃은 금방 시들어 싫다던 엄마의 거실에는 꽃 화분이 하나씩 놓였고,

작품들이 넘쳐나자 집 안에 자그마한 갤러리를 마련했다.


엄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이 많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 내내 파티쉐가 되고 싶었고,

아주 어릴 땐 검사가 되어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는 심리학자가 되어 사람을 알고 싶었고,

대학 때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외무영사직 공무원이 되고 싶었고,

이십 대 중반에는 국제기구에 들어가 인권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간절히 작가가 되고 싶다.


52세에 처음으로,

그림을 이토록 잘 그릴 줄 몰랐다는 엄마를 보며,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것은 꿈 많은 나를 키우느라,

정작 자신의 꿈은 찾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었고,

진작에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에 대한 회개였다.


아는 지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아직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조차 모른 채,

그저 나의 직업이, 사회가 심은 기대감이 나의 전부인 줄,

착각하고 사는 걸까.


어쩌면 직업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초조함이,

그것도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단념해 버린 그 낙심함이,

그들의 자존감을 그토록 갉아먹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아주 천천히 작업 중에 있지만,

언젠가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것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본 적이 없는,

어떻게 찾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을 위해,

작은 다이어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나의 꿈을 찾고,

내가 나의 취미를 찾고,

내가 나의 재능을 찾고,

내가 나의 적성을 찾고,

내가 나의 행복을 찾았던 그 모든 과정을,

함께 밟아갈 수 있도록,

꿈을 찾는 이들을 위한 다이어리를 만들고자 한다.


나는 직장인이기에,

시간도, 자본도 가진 것이 아주 적은 월급쟁이 회사원이기에,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해낼 확신이 든다.


나의 첫 다이어리는,

그림에 대한 재능을 찾고 좋아하던 우리 엄마가 가졌을,

또 다른 꿈을 찾아주기 위해,

직접 엄마에게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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