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자로 태어나 세상을 사랑하기까지
학창 시절 나는 한국사를 좋아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연도, 의복 문화, 경제 상황,
기득권의 정치 싸움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되려 오래도록 나를 잠 못 이루게 한 것은,
시대에 휘말린 사람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연히 세계사 책을 펴고,
힘의 역사에 의해 잘려버린 목소리를,
그들의 침묵과 고통을 파고들었다.
하영식 작가의 '희망을 향한 끝없는 행진, 난민'을 처음 접했을 때,
김재명 작가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나는 모태부터 믿어왔던 기독교를 버렸다.
내게는 역사의 모든 사건과 숫자들이,
단순히 시대의 한 지점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되려 그것은 한 인간의 절규가 되어,
나의 인생과 함께 걸었다.
고통이 잔류한 사회의 비극과 개인의 처절한 발버둥,
그 모든 아픔과 비극이 대물림 되는 불공평한 논리,
그저 탄생했을 뿐이나 시대에 휘말린 가엾은 인생들.
나는 신에게 화가 났다.
이 세상을 위해 나실인이 되겠다던 고등학생 아이의 순수한 기도가,
어쩌면 선진국에서 편히 살아가는 이에게서 밖에 나올 수 없는,
신조차도 어릴 적 치기라며 그저 웃어넘길 뿐일,
그런 하찮은 고백이었나,
밤새 밀려드는 자괴감과 분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던 광기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을 보며,
왜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벼랑으로 내몰았으며,
왜 나치정권에 유대인이 학살당해야 했으며,
왜 유대인은 오래전 사라져 버린 가나안에 대한 약속을 잊지 못하는지,
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하였고, 하고 있는지,
애초에 당신은 유대인들에게 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속에 당신은 어디 계셨는지,
나는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신과 기독교인을 저주했다.
그들의 위선과 비극을 초래한 뿌리 깊은 그들의 역사가,
끔찍하게도 싫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답을 찾아 인생을 헤쳐 나갔다.
이 고통의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번에는 신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그리고 나는,
인생의 벼랑 끝에서,
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항복이자 선택일 결론에 이르렀고,
신의 존재를 가정함과 동시에 비극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더한 혼란과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늘 의문이었다.
왜 나는 웃다가도 이내 울고 싶어 지는지.
뭐가 이리도 억울한 건지. 답답한지.
나실인으로 살겠다 다짐했던 고등학교 시절,
전쟁을 막을 최후의 방패가 되겠다던 다짐.
다른 것에는 메마른 내가,
가여운 인간의 생애에는 북 받아 차오르던 게.
잔인하고 서글픈 역사에서 도망치려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그 길을 가는 게.
어쩌면 의미를 찾아 울부짖던 모든 순간에,
당신은 내게 이미 답을 준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
한 가지 바라는 건,
이 길이 외롭지 않고 억울하지 않도록,
가슴깊이 사랑하는 영혼의 동반자를 보내주세요.
그리고 죽는 순간이,
두렵지 않고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 29살의 제주에서, 유언장 -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전쟁이 벌어지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네 목숨을 버리는 동시에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래?
고등학교 시절 깜깜한 저녁,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편의점 앞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전쟁을 막는 방패'가 되고 싶다고 기도했다.
28살 미국 NGO에서 무급 인턴을 하고 있던 당시의 나는,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난민의 고통이 끝나길 기도하며 흘린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29살 제주에서,
스타벅스에 앉아 이유 모를 억울함과 답답함에 눈물을 삼키다,
종이와 펜이 없어 냅킨에 유언장을 남겼다.
많은 시간을,
나는 죽음과 고통을 이길 의지가 있는 사람인가,
전쟁을 멈출 기회가 주어질 만큼 능력을 갖춘 사람인가,
나의 모든 것이 부정당해도 억울해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웃을 수 있는 사람인가,
고민하고 끝없이 질문했다.
그 모든 질문과 고민 속에서,
수없이 펼쳐지는 인생의 변수가 불러온 고통과 무력함 속에서,
나의 하룻밤은 기꺼함으로, 또 다음날 밤은 부정으로,
나와의 싸움을 지속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무런 능력도, 의지도, 이타심도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
난민을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넌덜머리 나는 인간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그 모든 순간들과,
역사책을 읽다 분노하면서도 답답함에 통증을 느끼면 나를 위해 덮어야 했던 순간들,
남의 일이라는 사람들의 모습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떠나고자 했던 순간들,
끝나지 않는 전쟁에 무뎌지고 지긋해져 버린 순간들,
그 순간들은 자명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애석하게도,
어쩌면 감사하게도,
초월적인 힘에 붙잡혀 이끌리듯,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했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발악해도 나는 이 분야를 떠날 수 없었으며,
절망이 몸에 베여 모든 의지를 잃었을 때는 위로를 받았으며,
차라리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죽음을 붙잡고자 할 때는 누군가가 나를 일으켰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정체성은,
도망쳤음에도 다시 돌아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무력감에 무감하고자 했어도 다시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않는,
실수하고 무능했을지언정 남은 가능성을 긁어 내 버리지는 않는,
전쟁이 또다시 일어나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다 해도 처음부터 돌을 쌓는,
그저 지쳐도 나아가는 것 외에는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고.
내가 유의미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삼키고,
이 땅에 천국을 달라는 나의 기도가 전쟁으로 응답되어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고,
당장의 평화를 꿈꾸며 나를 고문하지 않는,
오랫동안 꺼트리지 않고 자작히 타들어갈 불씨를 지켜내자고,
수동적 일지 모를 인생을 두려운 마음과 함께 기꺼이 품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