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P.4 까망베르 사과 타르틴

CAMEMBERT, POMME & NOIX

by 흩날림문고





나는 원래 치즈를 잘 못 먹었다.

어릴 때는 매운맛이 내가 느낄 수 있는,

미각의 전부였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칼칼한 우거지국밥이나,

양 볼이 떨릴 정도로 매운 순대국밥,

먹고 나면 화장실에서 살아야 하는 엽떡,

하루 종일 쓰린 위 때문에 현기증을 느낀 닭발까지,

아릿해진 시야 사이로 정신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최상의 맛이었다.


어쩌면 매운맛에 대한 나의 집착은,

매콤한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겠지만,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의 손이 채 닿지 못했던,

고독했던 유년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수업이 일찍 끝나 갈 곳이 없었기에,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홀로 점심을 챙겨야 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틀어 놓았다.


꼬르륵 거리는 배에 바빠진 손과 발은,

허둥지둥 나를 부엌으로 이끌었다.


플라스틱 통에 물을 받고,

봉지 라면과 스프 그리고 건더기를 차례로 쏟아 냈다.

그렇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초등학생이 먹기에는 조금 칼칼했으나,

눅눅하고 아삭한 식감이 근사한 라면을 홀로 먹었다.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아빠의 맥주잔에 라면스프를 털어 넣고,

면을 잘게 부숴 넣은 후,

팔팔 끓인 물을 컵에 가득 따라 마셨다.


왜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마시냐고,

길길이 화를 내는 엄마의 만류도,

결코 나를 막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를,

오로지 매운맛의 꽁무니만을 쫓으며 살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외동으로 숱한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던,

어리고 쓸쓸했던 나에 대한,

지극한 연민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선생님의 성함도,

대학교 교수님의 성함도,

당장 6개월만 만나지 않아도,

지인의 이름을 까먹는 내가,

유독 23년 전의 눅진하고 칼칼했던,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칼칼했던 맛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의 감각을 지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나의 연민 섞인 해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인이 되어,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어린 나를 감싸 안고,

어두운 감정에 기꺼이 나를 내던지며,

고독에 맞서는 동안,

그 맛은 점점 잊혀져 갔다.


입맛이 변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라면 국물을 바닥까지 긁어먹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라탕을 시키는 나이기에,

싫어져 버렸다기보다는,

다른 맛들에 더 행복한 기억이,

덧입혀진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고소한 치즈에 쌉싸름한 와인을 곁들인 기억,

남자친구와 예멘 음식을 먹던 순간,

인도 친구와 버터와 치즈 맛이 풍부한 커리를 먹었던,

그런 수많은 행복했던 기억들이,

새로운 맛과 함께 터를 잡았다.


어느새 눈을 뜨고,

서른이 넘어 버린 나를 마주하고 보니,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매운맛을 쫓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미,

어린 나를 향한 연민과 집착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타르틴 재료.HEIC
까망베르 사과 타르틴
CAMEMBERT, POMME & NOIX


먼저, 바게트.

바게트라고 하기에는 찰기가 조금 있는,

어쩐지 찰깨빵 같은,

곡물 빵을 구해왔다.


사실 주말에,

바람을 좀 쐬려고 방문했던 폴바셋 밀도에서,

먹음직스러운 빵이 있어,

콧노래를 흥얼이며 공수해 왔다.


사실 내 취향은 보다 바게트에 가깝지만,

타르틴 책에서는,

꽤 여러 번 곡물빵을 구해오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다음, 사과.

사과는 청송사과가 좋다고 해서,

발품은 못 팔았어도,

청송사과를 쿠팡으로 주문했다.


그런데 사과가 정말로,

달고 맛있어서,

요리하고 남은 사과들은,

요리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채,

생으로 잘라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까망베르 치즈.

사실 쿠팡에서 시킬까 고민도 했지만,

회사 앞 이마트를 직접 가보자 싶었다.

다른 마트들에 비해,

그래도 이마트는 다양한 외국 제품이 있어,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품은 프랑스산인 '엠보그'였다.

사실 일드 프랑스 까망베르를 사고 싶었으나,

가격이 거진 2만 원이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래도 프랑스산은 고집하며,

6천 원짜리 까망베르 치즈를 집어 들었다.


다음엔 어떤 타르틴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꼭 방문하고 싶은 치즈 가게가 있다.

서래마을의 전통 프랑스 고급 치즈를 파는 곳인데,

진짜 치즈의 풍미는 어떤 걸까,

과연 정말 다를까,

타르틴의 맛과 향이 더 좋아질까,

탐구해보고 싶다.


마지막, 호두.

킥은 호두였다.

사실 이번 타르틴은 내가 따로 해 먹기 전에,

집들이를 하면서,

손님들께 먼저 내보였다.


맛을 보지 못해,

약간 초조해하며 선보였지만,

먹어본 이 중에 한 친구는,

호두가 킥이었다고,

내 손을 들어주었다.


사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호두 한 팩에 만 삼천 원이나 하는,

비싼 호두를 놓고 망설이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원래 없으면 빼고 하는 거야"라며,

위로 같은 훈수를 두었지만,

나는 요리사가 알려 준 그대로의 레시피를 지켜내고 싶었고,

눈을 질끈 감고 호두팩을 카트에 넣었다.


시식단의 후한 평을 듣고 나니,

내심 우쭐해,

남자친구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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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첫 입을 먹어 본 이후의,

그 맛과 놀라움을 잊지 못한다.


홈파티에 내올 음식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한 입 먹었던 이 사과 까망베르 타르틴에,

깜짝 놀랐다.


사실 이 타르틴에,

올라가는 사과는,

오븐에 15분에서 20분 정도를 먼저 구워낸다.


사과가 갈색으로 익어가면서,

숨겨 놓았으나,

열기에 어쩔 수 없이,

내어 놓고야 마는,

그 한껏 끌어올린 단맛이,

오븐에 사과와 함께 살짝 구워낸,

치즈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풍미와,

이렇게도 잘 어울리는 거였구나,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 위에서 호두의 무거운 고소함이,

요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단 한 번도,

사과를 구워볼 생각을 못했던 내가,

아직도 알아야 할 요리의 세계는,

참으로 무궁무진하구나,

흘려보낸 세월이 무상하다가도,

앞으로 남은 맛들은 어떤 세계일까,

무료하고 지루한 생활에,

유일한 낙이 되어준다.


일도, 생활도, 도시의 환경도,

어느덧 익숙하다 못해,

목표가 사라져 지루해진 요즘,

어디 저 산골에 나무집을 지어 놓고,

타르틴을 해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홍차를 마시는 삶이,

너무나도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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