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ULET, GUACAMOLE & TOMATE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때면,
나는 긴장하고 숨을 비축해 둔다.
해가 떨어지지 않아,
여름잠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하기에,
새어나가는 땀과 기력을 도로 담으려 안간힘을 쓰며,
나는 버틸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독 더위를 많이 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가끔 운동장에서 훈화 말씀을 하던 시절이었고,
아이들은 마치,
모내기해 놓은 모들이 일렬로 논에 박혀 옴짝달싹을 못하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 퍼렇게 질린 것 마냥 서서,
땅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렁이와 함께,
아득해진 정신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나는 그중 첫 주자였다.
학창 시절엔,
겨울에도 더위를 타는 바람에,
에어컨과 선풍기를 끼고 살아야 했고,
양산 없이는 문 밖을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니,
점점 더 붉어지는 여름의 분노가,
달가울 리 없었고,
내 몸조차 버텨내질 못했다.
역시나 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름이,
지난해 보다 더욱 성이 난 채 다가왔고,
아니나 다를까,
몸이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하도 땀을 흘린 탓에 몸은 지쳐갔고,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더위에,
무력해진 혀는 입맛을 잃었다.
서울이, 여름이, 노동이 버거워졌다.
그런 내가 이 끔찍한 더위를 견디어 내고 있다면,
살아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이 계절을 묵묵히 버티고 있다면,
그건 타르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위에 절여진 혀는 다른 그 무엇도 찾지 않았으나,
매번 새로운 타르틴을 맛볼 때만큼은
전혀 모르는 행성에 발을 들여놓듯,
첫 감탄만이 유일하게 피로한 혀를 깨웠다.
미국과 제주에서의 시간과 달리,
유독 짙은 잿빛을 띠는 이번 여름은,
발끝까지 물을 머금은 듯,
한없이 축 가라앉지만,
먼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본다면,
새로운 타르틴을 베어 문 그 찰나만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닭가슴살 과카몰리 타르틴
POULET, GUACAMOLE & TOMATE
먼저, 바게트.
이번 바게트는 저번에 먹다 남은,
'메종 고댕'의 바게트로 만들었다.
오래 냉동실에 넣어놔도,
여전히 맛있는 걸 보면,
좋은 바게트임은 분명하다.
물론 내 스타일은,
겉은 보다 바삭하고,
안은 쫄깃한 류의 바게트 쪽이,
더 입맛에는 맞다.
다음, 과카몰리.
사실 아보카도를 직접 으깨 만들려고 했으나,
겉은 까맣게 변했던 아보카도가,
배를 가르고 보니 후숙이 덜 돼,
포기하고 쓰레기통으로 보냈다.
어쩔 수 없이,
쿠팡으로 4개에 10,800원인,
프레쉬코트 구아카몰 클래식을 구매했다.
사실 직접 만드는 것보다,
굉장히 오일리하고 묽어서,
맛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냥 먹었을 때와 달리,
다른 재료와의 조합이 좋았기에,
만족하며 먹었다.
다만 나중에 다시 만들어 본다면,
그때는 직접 만든 과카몰리를 사용해보고 싶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집 근처의 마트에서 구했다.
나는 우리 동네 마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일도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애초에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웬만한 이마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다양한 재료를 살 수 있어,
너무 만족하고 있다.
여기서 파는 대추 방울토마토는,
정말 달달하고 맛이 좋다.
다음, 닭가슴살.
이 닭가슴살도 집 근처 마트에서 샀다.
사실 일반 닭가슴살을 사서,
간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여기서 파는 닭가슴살에는 이미 간이 되어 있었다.
닭가슴살을 구워 맛보기로 한 입 먹었을 때,
생각보다 양념이 맛이 없어 실망했다.
물론 타르틴에 조합해서 먹은 맛은,
너무나도 훌륭해서,
봐줄 만은 했다.
다음번에는,
더 좋은 재료로 다시 만들어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대파.
대파도 집 근처 마트에서 구했다.
요새 만드는 타르틴은,
대파가 들어가서 그런지,
정말 한 끼를 대체할 수 있는,
식사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타르틴이 더 좋기도 하다.
나는 달달구리 디저트용 빵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지금까지 총 5개의 타르틴을 정복했다.
항상 새로운 타르틴을 요리하기 전,
내가 다 아는 재료고,
보이기에도 어떤 맛일지 예상이 가는데,
또 다른 맛이 존재할까?
매번 다른 맛을 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우려와 맞닥뜨린다.
실망할 태세를 갖추고 있던 나의 오만과 편견은,
바로 그 첫 입을 베어무는 순간,
순식간에 기화되고 만다.
이미 요리를 하기 전,
어떤 맛일까 궁금해 과카몰리 스프레드를 찍어 먹었고,
생각보다 느끼해 인상을 찌푸렸다.
굽다가 겉도는 닭가슴살 조각을 집어 먹었을 때는,
아, 이번에는 정말 망했구나, 싶었다.
엄습한 실패감이 들이치려던 찰나,
방울토마토가 터지며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어냈고,
닭가슴살의 담백함은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대파는 참 무심히도 알싸하게 들떠 있던 모두를 진정시켰다.
또 다른 맛이 있구나.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다채로운 것들이 존재하고,
나는 모르는 것이 이토록 많구나,
나의 무지함이 위로를 안겼다.
여름과 도시의 텁텁함에 지쳐,
어느새 삶에 대한 의욕도 기대감도,
체념과 함께 묻어 버렸으나,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내가 경험할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그 작은 사실이,
다시 살을 피둥피둥 찌우는 듯한 포만감을 준다.
나는 비록 내가 꿈꾸던 프랑스에 살며,
좋은 품질의 프랑스 식재료를 구하지는 못해도,
서울에서 나만의 프랑스를 바게트 위에 구현해 내고 있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좋아서 하고 있는 게 맞나?
아니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하고 있는 건가?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나는 정말 좋다.
타르틴이 정말 좋고,
새로운 맛을 알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졌고,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하는 나마저도 참 좋은 것 같다.
사실,
나는 지금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타르틴을 다 해 먹어 보며,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모든 타르틴을 정복한 그때,
나는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저 수도 없이 많은 타르틴을 다 먹어보는 그날,
나는 프랑스에 갈 것이다.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며,
현지 시장에서,
살아 숨 쉬는 재료를 눈으로 보고 만지고 먹어보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타르틴을,
프랑스의 재료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언젠가는,
바게트 위에 서울이 아닌,
내가 맛볼 진짜 프랑스를 올려놓게 될,
그 아득한 희망을 위해,
나는 계속 타르틴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