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DONS, OIGNONS & VACHE QUI RIT
침대에 앉아,
다음엔 어떤 타르틴을 만들까 고민하는데,
남자친구가 "이건 어때?" 하고 골라 준 것이,
바로 '베이컨 키리 치즈 타르틴'이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치즈 이름에,
"끼리 치즈가 뭐야?"라고 물었고,
남자친구는 "끼리 치즈, 안 먹어봤어?" 라며 되물었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던 남자친구와 달리,
한국에서 27년을 토종 한국인으로,
그것도 돼지국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각종 국, 탕, 찌개에 밥 말아먹는 것이,
지상최고 낙원인 줄만 알았던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크림치즈 같은 건가?"라고 물으니,
그는 "비슷한데, 완전 달라"라는,
모순적인 답을 내놓았고,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평소에도 크림치즈는,
뭔가 느끼하고 텁텁한 것이,
선호하는 식재료는 아니었기에,
솔직히 이번 타르틴은,
그다지 설레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어쩐지 맛이 그려졌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먹는 그런 맛.
시작도 전에 기운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온통 채웠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이 있다.
어쩌면 인간의 허점 투성이인 인생의 시발점은,
스스로를 오만과 편견으로 꽁꽁 둘러 맨,
나 자신의 편협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레 겁을 먹고,
이럴 거야, 저럴 거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그리다,
다 이룬 듯, 다 해본 듯, 다 맛본 듯한 착각 속에,
우리의 세계는 점점 좁아졌던 게 아닐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식탐에서 출발했을,
그저 먹거리에 불과한 타르틴에서,
인간의 인생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과,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는 나의 무지함에 대한 설렘을,
그 어떤 책을 읽을 때 보다도 더욱 강렬히 느낀다.
베이컨 키리 치즈 타르틴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내가 예상했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러나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하기보다,
오히려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 무한한 맛의 세계가 너무도 신비롭고 행복하다.
나의 가장 고질적인 오만과 편견 중에는,
생을 미리 예측하고 속단하는,
그래서 자연히 공허와 무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가장 미련하고 나약한 굴레가 돌아가고 있다.
그 굴레는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사소한 불행이 닥치면,
더욱 빠른 속도로 돌아가며,
세상과 나의 미래를 단정하고 만다.
서울에서의 삶은 행복을 포기해야 할 거야,
소설을 완성하지 못할 거야,
작가가 되기까지는 너무 먼 길이야,
두 번 다시는 해외에 나가지 못할 거야,
창조와는 거리가 먼 쳇바퀴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거야 같은,
진창에 파묻혀 돌아가던 굴레는,
어느새 이토록 사소하고 간단한 타르틴 한 입에,
돌아가기를 더디 하기 시작했다.
다음엔 어떤 맛을 먹게 될까,
기대감으로 충만히 차오르는 것처럼,
앞이 뻔히 보이는 것 같은 인생을,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했다.
단지 요리에 국한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순전한 삶에 대한 의지를 붙잡는,
대담한 용기를 감히 가져볼까 한다.
늘 꿈을 꾸는 사람으로서.
베이컨 끼리 치즈 타르틴
LARDONS, OIGNONS & VACHE QUI RIT
먼저, 바게트.
바게트는 할 말이 참 많다.
사실 성수베이킹스튜디오에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그 엄청난 바게트를 다시 한번 맛보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이 무더위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요새 하도 밖에서는 땀을, 안에서는 추위에,
몸이 극과 극을 오가는 고생을 하다 보니,
자연히 면역력이 바닥이 났다.
그래도 타르틴은 먹고 싶었으므로,
비교적 나의 동선에 있는 베이커리를 찾다,
'곤트란쉐리에' 빵집을 발견했다.
빵집 특성상,
바게트는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품절되는 걸,
경험상 너무나도 뼈저리게 알았지만,
도저히 오전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6시가 다 돼 가는 시간에 매장에 전화를 했다.
웬걸,
너무나도 친절한 직원분이,
바게트를 킵해주신다고 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냉큼 달려갔다.
왜 이제야 이곳을 알았을까,
바게트를 찾아 헤매이던 시간들이,
참 불쌍해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엄청난 품질의 바게트가,
외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인가, 2013년인가,
바게트 대회에서 수상을 했다고 적혀있었고,
더욱 기대가 돼서인지,
식량 창고를 두둑이 채울 겸,
킵해 놓은 바게트 말고도,
남아 있던 다양한 바게트류를 집어왔다.
드디어 나의 단골 가게를 찾았다,
뛰쳐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맛도 접근성도 친절함도 정말 모든 게 다 훌륭했다.
당분간은 여기서 나의 식량을 쟁여올 예정이다.
다음, 끼리치즈.
끼리치즈는 쿠팡에서 구매했다.
대략 6개 정도 개별 포장된 끼리 치즈가,
2팩에 6,390 원 하길래,
구매했다.
끼리치즈는 뭐랄까,
크림치즈보다는 더 꾸덕하면서도,
느끼한 맛이 덜하고,
보다 담백했다.
그냥 빵에 발라 먹어도,
충분히 맛있을 듯한,
그런 맛이었다.
어쩌다 가끔,
크림치즈가 생각날 때면,
필라델피아 같은 치즈 말고,
끼리 치즈를 집어와 봐야겠다.
그다음, 베이컨.
솔직히 외국산 찐 베이컨을 사고 싶었으나,
요새 식비를 너무 많이 쓴 까닭에,
예산이 너무 부족했으므로,
그럴 때면 제일 무난하고 좋은,
곰곰 베이컨을 구매했다.
대략 기다란 5~6줄이 들어 있는데,
2,080원 밖에 하지 않아,
야호, 재빨리 장바구니에 넣었다.
마지막, 남은 양파와 대파.
저번에 닭가슴살 과카몰리 타르틴을 만들다 남은 대파와,
어디에 쓰고 남은지도 모르겠는,
냉장고에 있던 양파를 사용했다.
아주 소량 들어가기 때문에,
냅다 생략해 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베이컨과 끼리치즈의 묵직한 맛을,
단번에 상쇄시켜 줄,
그런 맛을 제발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본다.
* 주의사항
모든 타르틴에는,
아니, 거의라고 표현을 바꾸겠다,
거의 모든 타르틴에는,
통후추 그라인더를 사용해,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좋다.
어쩌면 타르틴의 킥은,
후추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라인더로 간 블랙페퍼는 정말이지 최고의 가니쉬다.
솔직히 재료가 남은 탓도 있겠지만,
나는 늘 새로운 맛을 추구하고,
한 번 해 본 일에는 쉽게 질리는 성향인 까닭에,
굳이 그럴 필요도 의욕도 없지만,
그런 내가 두 번이나 해서 먹었다는 것은,
정말 맛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베이컨 끼리 치즈 타르틴은,
베이컨, 양파, 대파를 아주 가늘게 썰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다른 타르틴에 비해,
약간 귀찮기는 하지만,
그 귀찮음을 상쇄할 무언가가,
내 혀를 단단히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맛이라고 하면,
베이컨과 치즈의 조합은,
모두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겠지만,
어쩐지 바게트 위에 올리는 그 고소와 담백함과,
끼리 치즈의 남다른 가벼움과 무거운 그 중간의 맛은,
흔해 빠진 재료들의 맛을,
다른 전개로 이끌어간다.
아마,
호불호 따위는 없을,
참 지극히도 익숙하고 누구나 환영할 맛이지만,
독특한 타르틴의 매력은,
아마 먹어본 사람만이 알게 될 것이다.
요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찾아오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 하는 일은 창조와는 거리가 먼,
서류적인 업무이고,
의미를 찾는 직업이기에,
창조에 대한 갈망에 목이 바짝 비틀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 돈도 안되고,
오히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나의 몇 푼마저 금세 소진시켜 버리는,
이 타르틴의 여정을,
나는 무조건 끝내야겠다고.
돈을 쓴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자각할 만큼,
재료를 살 때는 신중해지는 나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이 과정이 행복하기에,
나는 새로운 맛과 세상을 창조하는,
이 타르틴 여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이 챌린지를 통해,
지금 하는 나의 귀중하고도 의미 있는 숙원을,
기쁘고 보람된 충만함으로 내려놓는 그날이 오면,
나의 인생 2막을 열게 될,
나의 두 번째 인생을 기어코 찾아 내고야 말 거라고,
타르틴을 먹으며 결심해 본다.
물론 요리사, 푸드 칼럼니스트 등,
이미 경쟁자가 포진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일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나의 수많은 꿈 중 하나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타르틴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꿈을 꾸고 있다.
어쨌든, 베이컨 키리치즈 타르틴은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