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이면
노력도 재능일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다.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무엇이든 노력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고, 곧잘 성과를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가진 노력하는 재능을 잘 쓴다는 반증일 것이다.
최근 노력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보인다.
여전히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노력하지 않는 결과란 것은 운에 가깝다.
운의 특징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지속성에 대해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반면 노력에 따른 결과는 지속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 다른 태도는 노력에 대한 폄하다. 이른바 ‘노오오오~력’이란 관점으로 노력만을 강조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이쪽은 노력 자체가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정당한 노력이 통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을 우선시한다.
솔직하게 내 입장은 ‘노력을 강조하는 쪽’에 가깝다. 노력이 통하는 사회 시스템의 개선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건 노력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가끔 사회 시스템의 부당함만 얘기하고 개인적 노력을 포기하는 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현실적인 개선도 얻기 어렵다.
자기를 먼저 구제하고 세상을 개선하는 쪽이 좀 더 가능성 있는 흐름이 아닐까 싶다.
노력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노력을 해야 할 방향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사람마다 노력이 잘 통하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 달리 말해 가능성의 씨앗이 잘 피어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라 칭해도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전문 투자가라고...그런데 당신의 자금은 한정적이다. 마치 노력에도 한계란 것이 있듯이...
수많은 스타트업 중 어떤 기업이 성공할지에 대해 당신의 이해도가 높다면 당신의 자금(노력)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당신이 기업에 대한 가능성을 보는 눈이 낮다면 곧 당신의 자금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엉뚱한 데만 투자되다가 고갈될 것이다.
누군가의 노력도 그렇다. 토질이 비옥한 땅처럼 자신의 가능성이 풍부한 곳에 씨를 뿌리면 더욱 풍성한 작물로 번창하겠지만,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에 씨앗을 뿌린다면 대부분의 씨뿌리는 노력은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어디에 자신의 노력이 투자되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을 ‘자기 이해가 높다’라고 한다.
노력의 이면에 충실한 자기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가능성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기계도 설명서를 무시하면 엉뚱하게 쓰이다가 망가진다.
한 마디로 노력은 자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더욱 유용한 재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