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이면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문제는 수많은 이 시대 직업인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한 번씩은 아마도 ‘뭐 이딴 시대가 돼버렸지?’ 같은 생각을 해보셨을지도 모르겠다.
직업현장의 최전방에 있는 커리어 컨설턴트로서도 이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아이들에게조차도 ‘도대체 뭘 예측해서 알려줄 수 있을까?’를 떠올려보면 막막할 때가 많다.
AI가 모든 것을 흔들어 바꿔 버릴 것은 분명한데 직업현장의 빠른 변화를 늘 봐 온 나조차도 이 속도는 감당이 안 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최근 가장 많이 하는 경험 중의 하나가 ‘뭘 간신히 배우고 났더니 그거 이제 못써요. 이게 훨씬 더 뛰어나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분명 인간이 만들었는데...확실히 삶에 도움이 되는데....왜 이렇게 인간은 AI로 인해 답답한 마음과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그 위기의 본질을 나는 ‘속도의 불일치’로 본다.
세상의 변화를 사람들의 변화속도가 쫓아가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는 인간 역사에서도 오래된 화두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Anomie)라는 표현은 흔히 기존 규범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준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혼란 상태를 의미하는데 사실 이 말의 어원은 무법·무질서의 상태, 신의나 법의 무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도 이런 불일치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있었던 셈이다.
문화지체는 기술·경제 변화는 빠른데, 개인의 가치관·제도·습관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 표현도 고민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용분야에서는 이런 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실업을 흔히 기술적 실업, 구조적 실업이라 표현하기도한다.
어쨌든 요즘의 속도감 차이를 보며 드는 생각은 ‘세상의 변화는 개인에게
적응을 요구하지만, 개인의 적응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술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적응시간이 충분했지만, 너무나 빨라지는 속도로 인해 이제 그 시간부족은 인간에게 일종의 ‘랙(Lag, 일종의 컴퓨터 통신지연장애)’ 같은 현상을 만들어버렸다. 시대가 변하며 인간에게 더 빠른 학습이 가능한 유전적 변화가 생겼을지는 모르지만, 그 변화로도 도저히 현재 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 하물며 이제는 인간이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AI 스스로가 만드는 변화가 닥쳐올 것임에야 이 고민은 그저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임시적인 치료라 해도 해법은 현재 시점에서는 하나뿐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의 속도 조절’이다.
적어도 제도적인 뒷받침이라도 최소한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지 않으면 대다수 인간은 그 속도 차로 인한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일은 빠르게 줄어들 것인데, 일이 없는 인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본소득조차 아직은 작은 씨앗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도 통제가 되지 않는 개인들의 이기심이다. 누군가는 이로 인해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것이기에 힘 있고, 앞서가는 자들은 쉽게 협력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인간이 이 흐름을 통제하려면 국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이 또한 힘 있는 사람들이 끌고 가는 조직에 가까우니...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통 사람들의 연대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이 흐름은 사실상 통제 불가능한, 인간사에 유래가 없던 직업적 학살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
일에서의 해방이 정말 멋진 말이 되려면 이 시기를 충분히 고민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전제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