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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있는 자만 머물 수도 있다

신 직장인 10계명

새로운 시대입니다. 직장인들 역시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할 듯 합니다.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신 직장인 10계명으로 정리해 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이야기, '떠날 수 있는 자만 머물 수 있다' 입니다.

   

이 시대 직장인들의 최고 고민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직업과 관련해 살펴보면 아무래도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까’의 문제로 보인다.

그 시대의 유행어들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단어들은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그와 관련된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다.     

60세로 연장된 정년연장법이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혜택을 받아 정년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현실적으로 55~56세 정년도 대부분이 채우지 못하고 나가고 있는 실정에서 60세 정년연장은 곳곳에서 비틀린 모습으로 직업시장 종사자들을 압박할 것이다.     


노조가 강력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퇴직압력은 어떤 직장에서도 상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몇 년째 보직을 받지 못한 채 내몰림의 압박을 당하는 4050세대의 얘기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심지어 통신계열의 대기업은 사무실 직원을 전봇대에 올려 보내는 등으로 퇴직압력을 행사했다는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기도 했다. 어떤 회사는 성과를 빌미로 타깃을 정해놓고 희망퇴직이란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자신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40대가 넘어서면 도무지 막막한 것이 요즘의 세태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대안마련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직업의 문제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는 있지만,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답이 쉽지 않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복잡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개인들이 이에 대해 진지한 답을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 시에 재취업을 지원하는 전직지원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해 회사가 돈을 지불하겠다는 상황에서조차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혼자 그 험한 길을 가는 이도 있다.  잘 알아서가 아니다. 잘 몰라서 그런 선택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랫동안 이 분야의 일을 하면서 수많은 직장인들을 만났다. 때로는 퇴직을 한 상태로, 또는 퇴직을 앞둔 상태로 만났지만 그들은 대개 ‘더 직장에 머물고 싶다’는 공통적인 바람을 얘기했었다. 그 바람의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현실은 대개 그런 이들에게 더욱 냉정했다. 사실상 퇴직을 종용받고 있는 대표적인 이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 어느 회사에서 퇴직을 위한 상담을 진행키로 했다. 그 회사에서 나눠 준 리스트에는 퇴직상담을 진행할 사람과 절대 퇴직상담을 진행하면 안 되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희망퇴직과 관련해 상담을 하러 온 이들 중에는 ‘퇴직을 하면 안 되는’ 이들이 더 많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떠날 준비’가 된 이들이었다.     



‘떠날 준비’가 됐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건 달리 말하면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건 고객이건 간에 그들에게 기여할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젊은 인재들은 나이와 관련 없이 취업이 잘 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젊은 자원이라도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은 밖으로 쉬이 나오려 하지 않는다. 막상 사람은 이기적이라 주판을 두들기며 바깥을 살피다보면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감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준비 없이 퇴직카드를 꺼내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회사에서 오랜 기간을 일을 했다며 자신은 전문가라 주장하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막상 경력을 검토해 들어가 보면 딱히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조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낸 경우도 별로 없다. 그건 결국 ‘대기업’의 표시나지 않는 소속원으로 있었을 뿐, 자신이란 자원을 제대로 계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런 이는 조직을 떠날 수 없다. 그곳을 떠나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폭락함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대기업을 다녔다고 중소기업에서 모셔가던 시절은 지났다. 어느 중소기업 모임에서는 대기업 출신들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고 평지풍파만 일으키고 금방 떠난다는 인사담당자의 볼멘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 시장에는 중소기업에서 자신의 마지막 경력을 마무리하려는 대기업 출신 자원들이 너무 많아졌다. 중소기업도 점점 까다롭게 대상자를 선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오직 떠날 수 있는 사람만이 머물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떠날 수 있다’라는 것은 실력이 있다는 것이고 실력이 있는 직원은 무슨 수로든 붙잡아 두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여기서의 실력은 단순히 ‘실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존 회사에서 만들어 온 인성과 실력에 따른 평판이 모두 포함된다. 결국 회사가 잡고 싶은 인재는 ‘실력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그래서 평판이 좋은’ 인재다.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반대편에 선 경우라면, 현실은 좀 혹독하다. 어떻게든 회사는 그가 떠나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존에 다니던 직장이 아니면 어느 회사에서도 그가 이전에 누렸던 지위와 조건을 받아들여줄 회사가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자신이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직업시장은 부장을 하던 이가 차장으로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다. ‘적절한 포지션에 가지 못하면 시장에서 배제되는’ 시스템에 가깝다. 

그러니 ‘버티기’로 들어간다.     

결국 이 험난한 직업시장에서 자신에게 좀 더 일할 기회를 부여하려면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야생의 정글과 같은 바깥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회사가 주는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내가 그 달콤한 과일(어쩌면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에 길들여져 갈 때 회사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떠날 준비’가 되면 그때는 회사가 매달린다. 표현이 과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회사가 자발적으로 당신을 떠나보내려 하지는 않게 된다. 바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당신이라면 회사 내에서 충분히 생산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떠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서로가 주고받을 것이 공평치 않은데 줄 것 없는 한 쪽만 자꾸 기대는 것과 유사하다. 그건 집착이다. 그 집단을 벗어나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지난 세월을 회사에 바쳤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그 기간 동안 회사는 당신의 경제적 생활을 일정수준으로 만들어 줬을 것이다. 매번 직장인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계약관계다. 애정은 서로가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 생기는 법이다.


오직 떠날 수 있는 자만이 머물 수 있다. 비록 당신이 ‘내 청춘을 바친 회사’라는 이름으로 애착을 보일 수는 있겠지만, 떠날 수 없는 그대라면 회사는 언제라도 당신에 대한 애정을 거두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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