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하루: 밤의 백합

by 가가루

어제 돌아오는 길에 백합 한송이를 샀다.

창곁에 유리 꽃병에 담았뒀다.


창밖의 불빛에 비친 백합을 보면서 잠들었고

아침에 깨자마자 또 백합이 보였다.

밤의 백합과 아침의 백합


백합향을 좋아한다.




커피를 안 마신 지 일주일이 넘었다.


나는 카페인에 쉽게 반응하는 편이다.

마시면 의욕이 생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가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올라간 만큼

다시 떨어진다.


그 폭이 나에게는 크다.


그래서 관찰을 했다.

나한테 맞는 선이 어디인지.


결론은

하루 한 잔.

그것도 아침, 연하게.


그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아예 끊어버리면

하루의 작은 즐거움까지

같이 사라지는 느낌이라서.


그래서

가끔, 간격을 두고 마신다.



오늘은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오랜만이라

정말 맛있는 걸 마시고 싶었다.


공간도 좋고

커피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을 찾아갔다.


추천받은 라테를 마셨다.


첫 모금에

아, 잘 왔다 싶었다.




카페 안에는 자리가 없어서

밖 테라스에 앉았다.


옆에는 커플이 있었고

나는 좁은 자리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빵도 같이 먹었다.



맛있는 커피와

맛있는 빵을

같이 먹는 것.


이 조합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건 오래 지속되는 기쁨은 아니다.


아주 짧게 생겼다가

금방 사라진다.


괜찮다.


내일의 간식과 음료가 있으니까.



다 먹고

백화점을 조금 걸었다.


새로 만든 곳이라

공간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식물도 많고

건물 자체도 미술관 같았다.

걷기 좋고

머물기도 좋았다.

요즘은 쇼핑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보는 건 좋아하지만

사는 건 예전보다 줄었다.


책도 비슷하다.


예전에는

사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읽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사기보다 빌려 읽는다.


나는

오래 머물 사람은 아니라서.



더 볼 건 없어서 내려오다가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처럼 생겼는데

커피는 없고

수제 맥주만 있는 곳이었다.


옆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조금 망설였다.



요즘은 술도 커피처럼

조절하고 있어서.


그래도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들어가서

몇 가지를 맛봤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한 잔 골랐다.


음악을 들으면서

밖을 봤다.


나무와 식물이 보였다.


의자도 편했다.




문구점에서

펜 하나를 샀다.


글씨가 잘 써질 것 같은 펜.



저녁에는

예약해 둔 요가 수업에 갔다.


커피, 맥주, 요가.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고,

책을 조금 읽다가

치치와 함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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