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존재하기
2020.3.11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침대 옆에서.
병원에 다녀왔다. 방콕 병원.
방콕 병원이 참 좋다.
내가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병원이 고급지다. 무슨 호텔 같다.
지금 사는 집과 가까워서
우연히 찾아온 건데
이런 병원이 치앙마이에 있구나 싶다.
병원에서 나와서 이쁜 꽃과 통을 찍었다.
통은 조금 컸다.
무얼 담는 용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가지런히 줄 세워 놓은 색감이 좋았다.
우연히 놓인 것 같은데 서로 잘 어울렸다.
쓰레기통도 샀다. 투명한 쓰레기통.
일반 쓰레기통으로 쓸 예정이다.
그릇과 컵도 조금 샀다.
사온 유리컵에 우유를 마셨다.
_________
작은 얘기를 하고 싶다.
머리와 마음을 힘들게 하는
어렵고 복잡한 얘기들은
쓰다 보면 길을 잃는다.
감당이 안 된다.
모른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게 된다.
다 지우고 싶어진다.
아무 글도 못 썼다.
아무것도 못 만들었다.
읽기만 했다. 읽고도 다 잊었다.
기록하지도, 남기지도 않았다.
그날그날 작은 얘기와 작은 단어에 둘러싸여 살았다.
유리컵에 우유를 마셨다. 같은 얘기.
무언가는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살아 있고, 심심하니까.
시간에게 미안하지 않게,
존재가 죄송하지 않게.
정성스럽게 존재하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존재하고 싶다.
쓰레기통 위치를 찾았다.
공간이 미니멀해서
친구가 내 집을 보고
家徒四壁이라고 했다.
쓰레기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니
그 존재감이 더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