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에 정직하려는 사람에게

예술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_조지 오웰

by 감영길

친애하는 S에게


어제 어느 책에서 '예술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라 쓴 조지 오웰의 문장을 만났습니다. 보통날이라면 이 사람이 그런 말도 했구나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이 소란해서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어요. 예술가도 아니고 하루를 살며 내일을 근심하기 급급한 내게 예술이 뭐라고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가 하고 말입니다. 감정이라면 몰라도 감성에는 둔한 사람인 탓에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제 생각을 그만둘까 싶어 질 무렵에야 문득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문장을 쪼개고 쪼개서 예술과 최악과 부정직을 따로 떼어놓은 다음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온 생을 들여 자기의 예술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예술하지 않는 우리에게 예술에 빗댈만한 가치를 갖는 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 삶이 예술이라면 '삶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로 바꿔 적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불쑥 튀어 오르더군요. 하지만 이내 의심이 생겨났습니다. 내 삶이 예술에 빗댈 만큼 가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요. '정직한 삶'하고 입술로만 되뇌어 본 말도 의심스러웠습니다. 도무지 정직한 삶, 그게 뭔지. 있다고 해도 가능한 건지 모르겠거든요. 생각해 보니 정직한 예술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한 예술가 중에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은 경우가 흔하던가요. 생각할수록 모르게 되는 게 있다더니 지금이 그렇습니다. 대체 '예술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란 말이 뭐라고 이렇게 붙들고 있는 걸까요.


S.

사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게 된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진짜 예술가인지도 모르겠네요. 저와는 다른 의미로 스스로의 삶에 부끄럽지 않기를 꿈꾸는 삶의 예술가요. 그러고 보니 조지 오웰의 문장을 만난 날 한 이름을 만났습니다. 그 이름도 S로군요. 오래된 이야기지만 돌아보면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을 가져다 붙여도 그때 정직했다고, 솔직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움으로 남은 과거, 솔직하지 못했던 못난 내가 거기 남아있더군요. 잊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생해지다니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긴 해도 잊히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그랬군요.

우연히 마주한 이름이 지나듯 눈에 들어온 문장과 만나 마음에 소란을 일으켰나 봅니다. 부끄러워하라고, 부정직한 삶이 가져오는 부끄러움을 잊지 말라고, 오늘부터는 조금 더 힘껏 정직하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날의 나는 오늘의 나만큼 강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과거에 변명해서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움만 더해질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에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사과하고 싶습니다.

사과합니다.

솔직했어야 하는데 부정직했던 그날의 나를 사과합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받게 된 이유를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 편지는 당신에게 쓰는 것이었군요. 당신이 받아야 하는, 받을 수밖에 없는 편지였군요. 당신에게는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이미 지나버린 시간, 아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날의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고 꼭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알지 못했지만, 오늘에야 당신에게 닿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요.


내가 알던 시절 당신은 예술가였습니다. 온전한 삶을 그려내는, 담아내려 애쓰는 훌륭한 예술가였습니다. 오래전 당신의 말처럼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언제까지나 당신 다운 삶, 당신을 닮은 삶에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의 삶이 고운 모습으로 남기를, 부끄러운 나의 삶도 온전하기를.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