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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Nov 24. 2023

덤덤

to. 사랑하는 아빠.


아빠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늘 딸내미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얘기해 줬던 게 기억나요. “덤덤하게 사는 연습을 해보자. “

그때는 이 말이 모든 일에 크게 연연하지 말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타인과 외부에 의한 평가와 의식보다는 나의 기준을 토대로 덤덤하게 살아가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문득 이 해석이 과연 아빠가 진정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의미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덤덤하게 산다는 것은 마음의 큰 일렁임 없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행여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거부하는 마음조차도 덤덤하게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오롯이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의 자세가 아닐까라는 이런저런 해석도 해보면서 아빠의 말을 곱씹어보기도 했어요.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들어요. 덤덤하게 산다는 것은 말은 단순하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 같아요. 아빠는 알죠? 내가 즐거운 일에 크게 흥분하고 기뻐하고, 속상하고 답답한 일에 크게 상심하는 딸이란 거. 기쁨에도 슬픔에도 높이 일렁이는 파도 같은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질문했는데 다행히 그 답을 찾았어요! 아빠가 던진 그 말 속에 당당하게 숨어있었더라고요. 그것은 덤덤하게 살라는 그 말 안에 들어있던 바로 ‘덤’이었어요.


딸내미는 이유가 없으면 실천하지 않는 성격인거 알잖아요. 다행히도 ‘덤’이라는 해답을 잘 찾은 것 같아요. 호흡하는 나, 세상을 보는 나,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 외에 모든 것들은 다 ‘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인연으로 감사하게도 나에게 와준 ‘덤’이요. 덤은 있으면 땡큐고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비록 작지만 작게나마 삶의 소소한 기쁨이 되는 그런 존재잖아요. 그래서 덤을 바라볼 때 크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는 거고요. 또 어느 날 내게서 떠나가도 비교적 덤덤하게  작별을 고할 수 있기에 욕심을 놓을 수 있고요.


진정한 본품은 나요, 덤은 나 외의 세상인 거에요.

아빠가 전했던 그 덤덤하게 살라는 의미는 결국 자신 외에 모든 것들을 덤으로 삼아, 외부의 것에 연연함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해석이 아빠가 의도한 것과 맞는지 아닌지를 지금은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지만 괜찮아요 아빠. 오히려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앞으로 그 말의 수많은 해석본을 제 나름대로 만들어보면서 더 멋진 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행여 찾지 못할까 답을 품어서 건네준 덤덤하게 살아가라는 따뜻한 그 말씀, 언제나 기억하며 잘 살아갈게요.


사랑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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