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놀고먹을 돈이 나에게 생긴다면?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2
나는 현재, 4년간 다녔던 직장에 휴직원을 제출하고 5개월째 빈둥거리고 있는 중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국어교사로 일하다가, 더 이상은 월급 노예로 전락하고 싶지 않아 사직서를 제출하고
멋지게 퇴사-, 할 뻔하다가 일단은 휴직을 한 상태이다.
마음은 물론 'DOBBY IS FREE!'를 외치며 사직서를 내고 싶었으나, 현실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반대는 생각보다 격렬했고, 나는 가족들과 연을 끊을 수는 없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해리포터>의 한 장면그리고 작년 가을, 브런치에 한창 퇴사 일기를 연재할 때 어떤 구독자 분은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이 없어 보여 걱정이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댓글로 달아 주셨는데,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 실제로 나에게 마땅한 계획은 없었으므로 타당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소설가로 등단할 수 있을까?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자기 의심에 빠진 탓도 있었는데, 결국 '자유로운 영혼'과 '월급 노예'라는 내 안의 두 가지 인격은 치열한 내전 끝에 어느 하나 승전보를 울리지 못하고 휴전 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 휴직이라는 비무장지대로 급히 피난을 떠났다. 그래서 현재 나는 노동이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도 않고, 꿈만을 좇아 훨훨 날아오르고 있지도 못한, 우울하고 끈적끈적한 액체 괴물 같은 상태로 지내고 있다.
현실 도피 대학원생이라는 외피를 입은 나였기에, 대학원 수업이 흥미 있을 리는 만무했고, 어쩔 수 없이 커리큘럼을 꾸역꾸역 따라가게 되었다. 하기 싫은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 발제 전날 밤을 새워 겨우 과제를 제출했고, 수업이 끝나면 해방감에 또 마구 게을러져 소파와 한 몸인 생활을 했다. 일상은 매우 단조롭고 무기력했으며, 마음은 이삼일을 주기로 왔다 갔다 했다.
어떤 날엔 '역시 돌아갈 구석이 있어서 안심이 되는군!' 했다가, 또 어떤 날은 '돈도 못 벌고, 대학원 때문에 시간도 마음대로 못 쓰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하고 신세를 한탄했다. 뜨거운 부침개 뒤집듯 휙휙 바뀌어버리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가족들 핑계를 대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겁쟁이라는 생각에 우울해 졌다.
하지만, 우울모드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대학원 수업이 종강하여 방학이란 것을 맞이하게 되었고 드디어 영영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진짜 자유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선생일 때나 학생일 때나 방학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나는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의 자유시간을 온통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만 채웠다!!!
남들이 다 출근하는 아침 시간엔 창밖의 긴 출근 행렬을 내려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일요일 밤과 월요일 아침엔 콧노래가 나왔다.
대학생 때 다른 사범대생 동기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휴학 조차 한 번 하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왔던 나에게 주는 최초의 안식년인 셈이었다.
알람 소리 없이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아침은 평화 그 자체였고, 딩굴대고 싶은 만큼 침대에서 딩굴대다가 느지막이 일어나 브런치와 커피타임을 즐겼다. 날씨가 좋은 날엔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다녔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유튜브의 세계를 탐험하고 게임에 몰두했다. 밤에는 동거인과 영화를 보며 술을 마셨는데, 쉬는 동안 '위스키와 칵테일'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했다. 거짓말하지 않고 30일 중 20일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친목 약속도 잡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 같아 만나고 싶은 마음 들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일상이 단조롭기도 했지만, 완벽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내가 부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에는 '경제적 자유'다, '파이어족'이다 해서 일만 하며 성공하는 삶보다는 일로부터 빨리 해방되어 여유롭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지금 바로 그런 아름다운 일상을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점점 불편해져 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방탕하게 즐길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힘들게 모았던 돈을 5개월째 까먹기만 하고 있다 보니 마음이 점점 심란해졌다. 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 글쓰기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다시 복직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것이고, 현실과 타협한 채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나는 분명 월급 루팡 나이롱 교사가 될 것이었다. 이미 달콤한 자유의 맛은 보았는데,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까마득히 멀리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일하느라 바빠서 쓰지 못했던(?) 돈을 놀러 다니며 팡팡 쓰다 보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글쓰겠다고 휴직했으면서 생각만큼 글도 많이 쓰지 않고 책도 많이 읽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내가 진짜 글 쓰는 삶을 원하기나 하는 건지 스스로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나는 단지 편하게 놀고먹고 싶어서 회사를 휴직한 것일까?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평생을 놀고먹을 돈을 쥐어 준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의 정답은 당연히 '글 쓰는 삶'이었다. 글 중에서도 순수하게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삶이다. 밥벌이를 위한 글쓰기 말고, 영혼을 구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대답이 금방 나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나한테 맞지 않는 업무환경'이란 불만족 요소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이제 나를 움직이게 하고 가슴 뛰게 만드는 '꿈을 좇는 삶'이라는 동기 요소를 충족시킬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상식! 교육 심리학 이론 중에 '동기*위생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직무 만족에 영향을 주는 것은 두 가지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기 요인'과 '위생 요인'이 그것이다. 위생 요인은 충족되지 않으면 직무에 불만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복지나 근무환경, 보수조건' 등이 있다. 이 위생 요인이 충족된다고 해서 바로 직무에 대한 만족감이 드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불만 없이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동기 요인은 '성취감이나 명예, 자아실현' 같은 것인데 이 부분이 충족되어야지만 직무에 대한 진정한 만족감이 든다는 이론이다.
나는 이제 비로소 5개월 간의 긴 도피 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방탕했던 부자 놀이는 이쯤에서 끝내고 일상을 계획적으로 꾸려가며 앞으로 남은 20개월이란 휴직 기간을 내가 진짜 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실험을 계획했다. 그 실험 중의 하나는 "브런치에 매주 목요일 밤, 규칙적으로 글 연재하기"이다. 그리고 또 pdf 전자책 출간, 10월에 개강하는 온라인 (유료)독서 클럽 운영(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브런치에서 주관하는 안데르센 공모전 지원, 내 인생 두 번째 소설 창작, 블로그 운영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전할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전국 국어교사 모임'의 하위 모임인 '소소모'에서 얻은 기회 덕분에 청소년용 문학 해설서 <최서해를 읽다>를 출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보글조차 바로 올리지 못하는 이런 게으름쟁이라니; 이제는 정말 출간 작가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계획을 다 달성하려면 정말 바빠질 것 같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돌진할 것이냐, 자유로부터 영원히 도피할 것이냐는 20개월 후의 나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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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사>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