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유예

휴직 일기가 되려나요

by 가하

참으로 바쁜 나날들이었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발행한 이후로 두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2020년이 마무리되고 새해가 밝았지만 연말의 훈훈함과 새해의 설렘을 맞이할 여력이 내겐 없었다. 연말연시는 학교가 방학을 앞두고 모든 업무를 마감해야 하는 제일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남은 예산을 다 털어버리고, 학생들과 축제 준비를 하고, 각종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고, 학부모에게 보낼 가정통신문을 작성하고, 진급 사정회를 한다. 그리고 대망의 학교생활기록부!!!

수능 세대인 나 때와 달리 요즘 고등학생들은 생활기록부로 대학을 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는 목숨과도 같다. 우리 때야 고작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이다'로 끝나는 몇 줄의 행동발달사항이, 장황한 소설책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잘 써줘야 하는 교사도, 좋게 받아내야 하는 학생에게도 모두 부담스러운 것이 학교생활기록부고, 그것을 써내느라 1월 중순까지 코피 터지게 바빴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는 핑계가 너무 길었다. 잊지 못할 2020년 한 해를 떠나보내고, 담임반 아이들을 진급시키고, 2021년 새 해를 맞이하면서 느낀 것들도 많고, 다정한 감사와 안부의 글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빴다는 핑계 하나로 모든 말들을 다 삼켜버리고, 전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나는 결국 퇴사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게 웬 배신인가, 당황스러울 독자 분들을 위해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퇴사 유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이 문제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 핑계를 대는 내가 문제겠지만;) 나는 먼저 언니들에게 퇴사에 대한 나의 의지를 보였지만, 언니들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설득이 되지 않아 싸우기까지 했다. 지극히 S성향(MBTI 중 '현실' 성향)을 보이는 언니들과 달리, 나는 N성향(MBTI 중 '직관' 성향)이라 언니들이 나를 이해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코로나 19 시대에, 잘 다니던 일자리도 없어지는 마당에, 안정적인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누가 봐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리니 더더욱 반발하신다. 엄마는 "네가 자꾸 그러면 엄마 쓰러진다"라는 소리로 협박을 해오신다. 그래, 내가 이 집구석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지. 가출하고 싶다.


연말에는 학교 관리자에게도 말씀드렸다. 내년도 업무분장을 해야 하는 시기라서 자연스럽게 말씀드리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신규 때의 저질 꼰대 교감과 달리, 지금 교감 선생님은 너무나도 자상하셨다. 나를 교감실 소파에 앉혀놓고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셨다. 상황 파악이 한 번에 되시는 교감 선생님은 꿈을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해 주시면서도,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면들을 짚어주시며 잠시 휴직을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더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려주시는 것이었다. 결국 현실이란 잣대를 들이 미는 건 가족이나 교감 선생님이나 똑같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마음을 기반에 둔 조언은 한 끗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다르게 와 닿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 가족들에게 당당히 퇴사를 승인받기 위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브런치 북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처음 응모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보기 좋게 광탈을 했고, 나는 가족들을 설득할 아무런 무기도 얻지 못했다. 나조차도 내 실력이 의심스러운데, 결과물도 없고 대책도 없는 퇴사 선언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물꼬라고 생각했던 작가 타이틀을, 나는 결국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학교일을 할 수는 없었다. 꿈이니 현실이니 하는 선택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지쳤기 때문이다. 서른여섯 해를, 겁에 질린 소심한 초식동물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대학생 때도 사범대 동기들에게 뒤쳐지기 싫어 휴학한 번 하지 않았다. (그 좋은 대학생 시절을 휴학 없이 보내다니ㅠㅠ 내 인생, 딱 한번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휴학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ㅠㅠ) 재수에 편입에 임용시험 준비 4년을 버티고, 또 처절한 직장생활 4년을 보내며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학교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때는 말을 자꾸 더듬게 되었다. 명색이 국어선생인데 말을 할 때마다 어버버 했다. 혀가 딱딱해진 북어대가리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집에 있어도 학교를 생각하면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눈물이 샘솟을 정도로 감정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병원에서는 공황장애에 가까운 증상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버틸 수만 있다면, 일과 꿈을 병행할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이 된다면, 멋지게 현실을 버텨내며 글이라는 꿈을 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쳐버렸다. 마음이 다 곪아버렸다. 수명이 다 한 찌그러진 배터리처럼 어떤 것을 해도 마음이 충전되지 않았다. 살고 싶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이렇게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죽기는 싫다. 아무렴, 사람이 중허지 돈이 중헌가. 나는 나를 살려야 했다. 약해 빠졌다고 혼쭐을 내도 소용없다. 나는 나약하고 주제 파악 안 되고,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몽상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걸.


어쨌든 그래서 결론은, 가족들의 (애정 어린) 극심한 반대와, 교감 선생님의 이해 어린 만류, 나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당장의 퇴사는 하지 못하고 휴직을 하게 되었다. 퇴사 일기를 연재하며 받았던 다양한 댓글 중에는 꿈을 응원하지만 일단 휴직을 하며 생각을 해보라는 중립적인 조언들도 많았는데, 그 고마운 마음들에 보답이 되는 결정이려나...(다시 한번 많은 댓글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휴직을 하면 교사는 겸직 금지라 돈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유튜브나 블로그 마케팅, 강사 등은 겸직허가 신청서를 내고 학교장의 승인을 받으면 겸직이 되기도 한다.) 소소한 일로 생활비를 벌며 글을 쓰고 싶었던 나에게 휴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데,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이 진퇴양난의 형국에서는 경제적인 타격이 조금 있더라도 '휴직'만이 답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휴직에는 무급휴직인 '연수휴직(일반대학원 진학)'밖에 없어서... 도피처 삼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 등록금만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지만...(작년에 학자금 겨우 다 갚았는데 다시 또 학자금 대출의 늪으로 ㅠㅠㅠ) 그래도 집 근처 국립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서 추가 모집을 해줘서 어찌나 다행인지!!! 계속 마이너스인 내 인생이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며 그토록 바라 왔던 습작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조금 쪼들리는 생활이어도,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안돼!!!) 그 안전망 위에서 마음껏 창작을 하며, 책을 읽으며, 몸 건강 마음 건강 챙기며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마침 덕담이 오고 가는 설날 시즌이다. 이 글을 읽어주신 고마운 독자님들의 삶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길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앞으로의 활동 계획

1. 못 다 한 학교 이야기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2>에서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2. <문학 속 한 구절>이라는 매거진을 통해, 제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3.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회원제 독서 클럽'을 운영해 보고자 합니다.

4. 습작 소설 일부 공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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