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꿈이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소소한 꿈 여정기

by 가하

내 나이 서른여섯.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어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나이지만, 나도 처음부터 꿈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꿈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축에 속했다.

학창 시절에는 피아노, 태권도, 서예 등 다른 친구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특기를 가지고 있지 못해서 자기소개를 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항상 난처했고, 대학생 때는 성공한 분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저렇게 성공은 하고 싶은데 무엇으로 성공해야 할지 몰라서 망연자실했었다. 혈기왕성한 20대, 무언가 하고 싶은 일만 찾으면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해서 그 분야의 1등이 되고 싶었고, 무언가 성취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정작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OO을 좋아해요, 3년 안에 OO을 해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개성과 활기가 샘이 났고, 아무런 색도 가지고 있지 못한 회색 인간 같은 나 자신이 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연애와 동아리, 술에 빠져 20대를 흘려보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계발해나가야 할 청춘의 시기에, 나는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 물론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진로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밤마다 대학 졸업 후의 미래를 걱정했으면서도, 꿈을 찾는 노력은 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학점 4.5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탔고, 교내 공모전에 당선되어 400만 원 지원받고 인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공장이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4년 내내 악기 동아리를 하며 영광스러운 솔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복수전공을 해서 교사 자격증 두 개와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따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는 사범대를 졸업했지만 임용시험을 보고 싶진 않았다.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딱히 할 일을 찾지도 못해 그냥 졸업했다. 교사가 싫다고 해서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에 취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기 싫은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은 사범대 졸업생이라니. 내가 봐도 그때의 내 모습이 참 한심하고 답답해서 많이 울었다. 방향과 목표 설정 없이 살아지는 대로 열심히 산 결과, 아무것도 아닌 잉여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 그냥 예전부터 막연하게 동경했던 소설이란 것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좋아했고 인터넷 공간에 글을 끄적이는 것도 좋아했으므로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생 때 백일장에서 몇 번 상을 받은 기억이 났다. 예고에 가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입도 뻥끗 안 했던 기억도 났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 주관 백일장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광탈하고 속상해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아마도 그때의 실패가 나에게 큰 타격을 입혔나 보다. 그 후로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꿈의 씨앗을 슬그머니 덮어버렸던 것 같다. 마치 이건 처음부터 내 꿈이 아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결국 몇 년의 허송세월을 한 후에야 비로소 먼지 쌓여 있는 꿈의 씨앗을 하나 찾았고,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며 아주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한동안은 취직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소소하게 번 돈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습작생들과 스터디를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이런 방향이 맞는지 의문이었고, 글쓰기 학원을 다니기엔 돈이 부족했다. 주변 어른들도 걱정스러워했다. 사범대 나와서 왜 그러고 있냐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걱정에 나도 덩달아 불안해졌고,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착실하게 대학 졸업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데 나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았다. 부모님도 연세가 많으셔서 내가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체계 없는 공부로 신춘문예에 등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2~3년만 도전하면 등단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도 있으면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으니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래서 고작 3개월 만에 습작 생활을 접고 임용고시판에 뛰어들었다. 국어교사가 되면 돈을 벌면서 못다 이룬 창작의 꿈을 펼쳐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꿈의 싹을 잘라버렸고 어렵사리 공부를 해서 겨우 국어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내 적성과 너무 맞지 않았고, 나는 문학과 크게 상관없는 일들을 했다. 학생들 두발 복장을 단속하고, 학부모와 상담을 하고, 잡다한 행정업무를 하고, 가출한 학생을 찾으러 다녔다. 그나마 수업 시간에는 문학을 다루었지만, 고작 자습서에 달린 요상한 해설을 학생들에게 쉬운 언어로 번역해주는 게 전부였다. 일 년에 네 번, 정답이 있는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틀린 답을 고른 학생에겐 9등급짜리 성적표를 내밀었다. 수업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모든 아이들이 만점을 받을 수는 없었고, 모든 아이들이 만점을 받아서도 안 되는 상대평가 시스템이 존재하는 곳이 학교였다.

게다가 너무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과 진로 상담할 때도,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추구하는 아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하면 아이들은 십중팔구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저는 재능이 부족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부모님이 반대하세요, 일단 좋은 대학 가고 나서 생각할래요, 그 꿈으로는 취업 못해요...' 등등... 꿈이 있는 아이를 보기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면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 아이를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학생들은 노래를 잘하는데 노래를 못한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데 그림을 못 그린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넘치는데 아이디어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나이에 벌써 꿈이 아닌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문득 18년 전의 내가 생각났다. 나 또한 고작 18살이었을 때 '나는 역시 재능이 없어. 문예창작학과로 대학에 가기에는 벌써 예고 애들한테 뒤쳐졌어. 국문과에 가면 굶는다던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어리석음에 코웃음이 나온다. 내가 그때 조금 더 용기를 갖고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조금만 더 내 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나이의 곱절을 먹은 36살의 나는 오히려 '퇴사'라는 철없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되었을까? 한창 비현실적일 나이에는 (어른들이 주입한) 현실적인 잣대로 꿈의 싹을 잘라버렸고, 한창 현실적으로 살아갈 어른의 나이에는 오히려 꿈을 꾸고 있다. 정말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슬퍼진다. 부모들이, 교사들이, 이 사회가 아이들의 재능에 맞는 꿈을 응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물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선생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될 거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나도 확신이 없으므로 위험한 조언이 아닐까 반성해보기도 했다.


꿈을 좇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기엔 나부터가 꿈을 피해 다녀 여기까지 왔으니 할 말이 없었다. 꿈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면서 너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내가 허풍선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꿈을 이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증명해 보일 수 없었고,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었으므로, 퇴사를 생각 중이다.

12년 전의 나, 처음으로 꿈을 품었구나


물론 요즘에도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꿈이 있는 것이 꿈이었던 내가, 이제는 확실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우연한 기회로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내 안에 있던 꿈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 꿈은 이미 내 안에 있었는데, 그걸 보려 하지 않고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니 찾을 수가 있었겠나.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꿈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그것을 한두 번 시도해보고,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누군가가 갖게 되는 것이 꿈이겠지. 두려워하며 꿈에 도전할 것인지, 지겨워하며 현실을 버텨낼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나는 두려움을 택했다.

시간의 축을 빠르게 돌려서 지금으로부터 18살 더 먹은 미래의 나는, 36살 먹은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하게 될 것인가? 18년 후면 내가 54살이다. 100세 시대라고 생각하면 죽음까지 50여 년의 시간이 남은 시점일 텐데...나는 그때,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는지, 정말 잘했다고 말하게 될는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싶은 기분이다.







***지난 번 글이 브런치와 다음에 추천되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구독자도 25 분이나 늘었고, 다른 글에도 좋아요 많이 눌러주셔서 정말 행복한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목을 삐끗해서 물리치료를 받고 왔네요. 의자에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많이 다듬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글이라 송구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올려봅니다. 무더운 여름밤, 시원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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