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기에 적당한 때가 있을까? 30대 중반에 공무원을 그만두려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을 전해온다. 내가 주로 듣는 반응을 유형화해보면 크게 네 가지의 유형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객관적 반응자'이다. 이들은 '우와, 너 진짜 짱이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대단해!'와 같이 반응하는데, 나의 도전이 일상적인 일은 아니기에 우선 크게 놀라고,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나의 결정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놀라운 느낌을 표현할 뿐이다.
두 번째는 '비판적 반응자'이다. 그들은 '야, 니가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와 같은 말을 하는데, 그들은 공무원이란 직업이 주는 안정성과 복지제도 같은 외적인 조건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므로, 나는 그냥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 그랬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자기가 일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나마 공감해준다.
세 번째는 ‘경험적 반응자’로 나와 같은 선택을 한 발 먼저 해보았던 분들의 반응이다. 그런데 참 맥이 빠지게도 부정적인 말들이 많다. '퇴사하고 프리랜서- 그거 내가 해봤는데 생각보다 안 좋아. 월급쟁이일 때가 좋았지.'라는 식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퇴사 후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도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다만 내 주변에 없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꼭 책 속에나 존재하더라. 그래서 나는 내가 읽어온 책 속의 멘토들을 떠올리며 ‘나도 잘할 수 있다!'라고 되뇌어보지만,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경험론자들은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취미를 업으로 삼으니 하고 싶던 일도 싫어지더라고. 물론 이것 또한 누군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제 사례겠지만, 사실 나는 글만 쓰며 사는 요즘이 아주 행복하다.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이 자유의 시간이 너무 좋다. 그리고 설령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일지라도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돈을 번 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가득했던 직장에 꾸역꾸역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때문에 이런 유형의 조언은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내적 확신이 서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사실 앞 선 세 가지 유형보다 제일 많이 듣는 소리이자, 내 마음에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키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말 부럽다. 나도 배우자와 자식들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대로 살 텐데.'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로, 이들을 ‘회한적 반응자’라 부르고 싶다. 나는 사실 이런 대답을 들을 때가 제일 난감하다. 우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하지 못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고 있고, 딸자식으로서의 책임감을 져버릴 수 없어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마음앓이하던 나의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도 항상 저런 핑계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봉양해야 하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어.'라고 말이다. 유튜브나 책에서 꿈에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저 사람은 적어도 부양해야 할 가족은 없었겠지. 나도 내 몸 하나만 신경 쓰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반복하면 할수록 내가 꿈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마치 부모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급기야 부모님의 존재를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나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으려나’하는 불손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나는 이윽고 나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꿈을 위해 살고 싶지만 현실에 발목 잡혀 있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내가 발목 잡힌 현실이란 곧 '부모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생이란 게임에서 나를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켜버리는 위험한 사고였다. 나는 이것을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바꿔서 표현해 보기로 했다. 나는 현실에 발목 잡힌 것이 아니고, 매우 이성적으로 현실을 챙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에게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신 적도 없고 이제나 저제나 딸이 밥은 잘 먹고 지내나 걱정만 하시는 선량한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나를 발목 잡으려고 하신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스스로 ‘착하고 자랑스러운 딸’ 노릇을 자처한 것뿐이다. 나는 다만 부모님을 조금 더 잘 봉양하고 싶었을 뿐이며, 평생을 막노동판과 경비원, 아파트 청소부를 전전하며 사회적 약자로 살아오신 부모님의 기를 세워드리고 싶어 '교사 딸' 역할을 맡은 것뿐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은 다 나의 순수 자발적인 '선택'이었던 것이고, 지금의 자리가 후회된다면 그것은 다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사고의 방향을 전환하고 나니,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뭔가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을 먼저 챙긴 것이 아니라 고생하신 부모님을 먼저 챙겼던 것이다. 그리고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교직 생활을 하며 분명 얻은 것도 많으니 아직까지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솟구쳐 올랐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이 직장이 나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며, 내겐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는 것도 자명한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이 직장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용기 있게 퇴사를 할 것인가. 그것은 순전히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나 자신보다는 가족들의 입장을 우선시하며 참기만 할 것인지, 가족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최소한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내 시간을 오로지 내 마음대로 쓸 것인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택했다. 평생을 후회와 회한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한 번 태어난 이상,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 보지 않고 늙어 죽는 것은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면, 굳이 이 구차한 목숨을 짊어지고 살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길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면, 적어도 부모님에게 짜증은 덜 낼 수 있으리라. 내가 불만스레 꿰차고 있는 이 국어교사 자리는 누군가에겐 진실되고 간절한 꿈 이리라. 그리고 내가 부모라면, 자식이 나를 짐처럼 여기며 꿈을 접는 모습을 보게 되면, 너무나 처참하고 안타까울 것 같다. 물론, 내가 부양해야 하는 자식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 선택에 의해서 꾸린 가정이라면, 당연히 내가 책임지고 자식들을 부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최고 수준의 양육을 제공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돈보다는 사랑을, 일에 찌든 부모의 모습보다는 꿈을 좇으며 미래를 설계하는 부모의 모습이 교육적으로도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자식 입장에서도 나 때문에 희생하고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독자분들에게도 이야기해본다. 누군가를 위해 하는 희생을 더 이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 자신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고, 내가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최소한의 것만 하며 진심 어린 이해를 바라보자고. 그리고 행복해지자고. 나 자신이 행복해지면 내 주변도 행복해지는 법이니까. 사회적 시선이나 권위나 책임에서 조금만 가벼워지면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 없이 모두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당장의 생계가 시급하여 정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선택'이라고 생각하자고. 이렇게 힘든데도 씩씩하게 버티며 나와 내 가족을 잘 부양해내고 있다고, 나는 정말 이타심이 많은 선량한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훗날을 기약하자. 꿈을 꾸기에 적당한 나이란 없고,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라도 꿈을 향해 도전할 좋은 날이 분명 올 것이니, 그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그리고 아주 조금씩 꿈의 싹을 키워보자고...
왜냐면, 꿈이 없는 삶은 너무나 삭막하니까. 내가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꿈일 테니까. 이뤄지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과정이 즐겁다면 그걸로 행복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