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는 돈이 든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고 싶어서 2

by 가하

요즘 직장을 때려치우기 위해 잡다한 부업을 벌이고 있다 보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글쓰기라는 나의 본업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직장에 다닐 때만큼 스트레스받고 있지는 않지만, 장애물은 역시 내 안에 있었다. 부업을 잘 키워서 월급에 준하는 수입이 생기면 좋겠다는 강렬한 소망이 생겨버린 것이다. 퇴사한 것이 후회되지 않게, 예전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꿈을 좇고 있는 건지, 돈을 좇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꿈을 좇을 수 있게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유튜브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업으로 부자 되기’ 콘텐츠를 보다 보니 아, 나도 정말 몹시도 부자가 되고 싶어 졌다!

사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계는 ‘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세계였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라도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으니까. 나는 초, 중, 고, 대학 시절 내내 기초생활 수급자의 자녀로 살아야 했는데, 그 꼬리표는 나의 내면에 수치심을 남겼고,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낳았다. 가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므로 국어교사라는 직업을 얻었지만, 애초에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었을까?


《맹자》 이루장구 하(離婁章句下)에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라는 말이 있다. 물은 웅덩이를 채워야 비로소 흘러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구절은 학문 수행에 있어 잔꾀 부리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넘어가라는 의미지만, 대학 시절 이 문장을 배울 때의 나는 그 웅덩이를 사람 마음속의 ‘결핍’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결핍은 욕구를 만들어내고,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전에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지금 내게 결핍된 것은 돈일까? 꿈일까? 나는 하루 종일 부업한다는 핑계로 소설은 한 자도 쓰지 않았다. 가난이라는 결핍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아서,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나 보다. 사실 내가 대학원이라는 도피처로 도망쳐 온 것은,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나부터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소설가로 등단할 자신이 있고, 전업 작가로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시간 뺏기고 돈 버리는 대학원에는 등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퇴사’라는 카드를 바로 꺼내들 수 없었던 나의 내면에는 여전히 가난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나보다. 나는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며 출처를 알 수 없었던 나의 불안과 직면할 수 있었고, 불안의 정체와 마주하고 보니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젠 과거가 되었다고 생각한 가난이 너무나도 친숙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 왔기 때문이다. 놓여났다고 생각했는데 끈덕지게도 내 안에 달라붙어 있는 두려움.


가난, 그 궁색하고도 지겨운 테마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아마도 수많은 기회를 앗아갔다는 것이겠지. 어릴 때부터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많은 배움의 기회들을 날려버렸다. 초등학생 때는 바이올린을 켜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졸라댔고, 중학생 땐 영어나 수학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한 번은 내 단짝 친구가 학원 가기 싫다고 징징댄 적이 있었는데, 그 학원은 당시 수원에서 유명했던 스파르타식 학원이라서, 쪽지시험 틀린 개수대로 손바닥을 맞는 학원이었다. 공부를 하지 못해 손바닥을 맞아야 하는 친구의 처지가 안쓰러우면서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그 학원에 갈 수만 있다면 손바닥 안 맞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텐데-. 고3 수능이 끝났을 때, 친구들은 운전을 배운다 수영을 배운다 난리였다. 하지만 우리 집엔 어차피 자동차가 한 대도 없으니 나는 운전을 배울 필요가 없었고, 대학 등록금도 빠듯한 마당에 취미를 위해 돈을 쓰는 사치 같은 것을 부릴 수는 없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포토샵도 배우고 싶었고, 영어회화도 배우고 싶었고, 또 유럽 여행도 가고 싶었고, 캠코더도 갖고 싶었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갑자기 생각의 길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결국 무엇을 하고 싶었더라? 내가 놓쳐버렸다고 생각한 그 기회들을 잡았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질문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이 나의 진짜 욕망인지도 알 수가 없어졌다. 나는 그냥 부자가 되고 싶은 거 아닌가? 월급쟁이로는 부자가 될 수 없으니, 문학성 따윈 모르겠고, 그냥 베스트셀러 한 권만 터트려서 인세로 몇 억 씩 벌어들이고 싶은 그런 욕망 때문에 글을 쓰려고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온갖 욕망들로 마구 뒤엉켜버린 내 마음을 한동안 그냥 두고 보았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누가 불러도 대답 없이, 그냥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고, 졸리면 잠을 잤다. 아, 이렇게 미쳐가는구나.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구나. 하하.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가 고개를 돌려 책장을 무심히 바라봤다. 사놓기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한 박경리 선생의 대하장편소설 <토지>가 눈에 들어왔다. ‘국어교사 중에 <토지> 21권을 다 읽은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채 안 된다’에 내 손모가지를 걸면서, 제1권을 뽑아 들었다. 2002년, 재출간 기념으로 쓰인 서문에는 책이 너무 잘 팔리는 것을 경계하며 절판된 상태로 3년이나 재출간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인(商人)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이 다시 나가게 되니 마음은 석연찮다. 자기 연민이랄까, 자조적(自嘲的)이며 투항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낀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 박경리, <토지> 제1권 서문 중에서, 나남출판, 2002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꿈도 아니고 문학을 하고 싶다면서 처음부터 문학으로 돈을 벌 생각을 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자기 책을 재출간하면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끼는 시대의 문학과,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셀프 홍보도 마다하지 않은 요즘 시대의 문학은 과연 다른 것일까? 모든 것이 돈이라는 교환가치로 평가받는 세상. 나조차도 자본주의가 너무 미운 사람이지만, 자본주의의 혜택을 멀리하며 살아가기에 나는 지조가 높지 못하다. 아니 어쩌면, 순수한 마음을 짓밟는 ‘돈’이라는 녀석을 정복하고 싶을 정도로, 돈을 여전히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역설.


아무리 돈을 부정해봤자 돈이 기회와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돈이 있어야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겐 지금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필요하다. 역시 꿈에는 돈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꿈을 포기하는 거겠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제 성인인 나는 어렸을 때처럼 갖지 못한 기회들에 울고 앉아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버는 것과 그냥, 먹고살기만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니까. 며칠간의 혼란을 이 글을 통해 정리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냥 돈과 꿈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했다.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당위는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속의 결핍이 추동하는 대로 이끌려가기로 했다. 꿈이 목마르면 꿈에 시간을 더 투자하고, 돈이 부족하면 돈을 더 벌어야지. 그리고 당장은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쓸 수밖에 없더라도 너무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조차 결국엔 꿈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니까. 국어교사가 되었던 것도 꿈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한결같이 꿈의 언저리에 머물러왔구나. 이제는 꿈의 본진으로 좀 들어가 보자. 이제는 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아보자. 영과이후진. 이제 내가 채워야 할 결핍은 ‘가난’이 아니라, 꿈을 좇을 수 있는 ‘기회’이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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