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다
각본이 짜여있는 삶에서 탈출하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나는 드디어 '퇴사'라는 것에 성공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한 장씩 품고 산다는 그 사직서를, 나는 정말 학교에 들이밀고 만 것이다. 드라마나 시트콤처럼 멋지게 한 방, 속 시원한 멘트 하나 날리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굽신거리다가 교장실을 나왔지만,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 노예가 자신을 속박하던 쇠고랑을 스스로 끊고, 들판을 향해 걸어 나온 기분이었다. 누군가 쫓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망연자실한 마음은 없었다. 그저 담대한 마음뿐이었다.
한 학기 휴직을 하고 워낙 오랫동안, 그리고 다각도로 고민했기 때문인지 나는 내 선택에 아무런 의심도 남지 않았다. 나는 퇴사 결정을 알리기 전날 심지어 이런 가정도 세워봤었다. 앞으로 주 4일제가 시행되고,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 내외로 감소(혹은 담임제도 폐지)되면, 나는 그때도 퇴사를 하고 싶을까?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며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주 4일 일하고, 주 3일 온전한 자유 시간을 갖는다면, 그런대로 일과 꿈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몇몇 기사들을 살펴본 결과 주 4일제가 2~3년 안에 시행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소용이 없다. 2~3년 후의 나는 굉장히 달라져있을 거니까. 나는 미래의 실낱같은 희망보다는 현재의 확실한 오늘을 택했다. 그리고 주 4일만 일할 수 있다고 해서 학교가 싫은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후회할 수도 있는 모든 요소들을 이렇게 다 검토하고 나니, 나는 드디어 퇴사 결심을 내릴 수가 있었다. 물론 당장 2학기 대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시기가 와서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긴 했지만. 오로지 휴직이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에게 의미 없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돈 낭비였다.
월요일 아침, 나는 비장한 각오 속에 눈을 떴고, 정신없을 아침 시간을 피해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작년 연말, 근무 중에 교감선생님께 처음으로 퇴사 얘기를 꺼냈을 때는 목소리가 떨리고 울먹거렸으나, 이번에는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교감 선생님도 더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는지,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셨고 이후의 절차들을 안내해주셨다. 나는 수요일 아침 10시, 코로나로 텅 빈 학교로 향했고 '상기 본인은 개인사정(이직)으로 퇴직하고자 하니 청허하여주시기바랍니다.' 딱 한 줄을 자필로 쓰고 서명을 하고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인생을 한 방향으로만 살아가고 있을 때, 나 혼자 트랙에서 벗어나고 보니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생각이 났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7년 전의 어느 날, 나는 그날도 잠시 트랙에서 내려온 적이 있었다. 수능 세대였던 나는 아침 0교시에 늦지 않기 위해 집 앞 정류장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12년간 매일 다녔던 학교였지만 비가 와서 그랬는지,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통학버스는 나를 데리러 왔고, 버스가 오니 속마음과 달리 습관처럼 차에 올라탔다. 30분 정도 후에 학교에 도착하고, 나는 학생들 무리에 휩쓸려 교실로 향했다. 비에 젖은 우산을 책상 고리에 걸고, 책가방을 무심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몇몇 친구들은 엎어져 자고 있었고, 몇몇은 공부를 하고 있었고, 또 몇 명은 잡담을 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방을 풀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내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학교에 있기 싫었다. 학교가 싫은데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졌고 왜인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학교에 있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마음속에 가득한데, 학교에 계속 남아있는 것은 나를 기만하는 일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시간표대로 굴러가는 숨 막히는 학교를 탈출하고 싶었다. 나에겐 그럴 자유가 충분히 있었다. 이렇게 썩은 표정과 시체 같은 마음으로 학교에 계속 남아있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지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내 내려놓았던 가방을 그대로 다시 둘러매고 빠르게 교실 뒷문으로 향했다. 짝꿍이 놀라며 이제 곧 조회시간인데 어디 가냐고 소리쳤다. 나는 대꾸도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교실을 나섰다.
학교 근처 굴다리를 지나고 있을 때, 담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얼른 돌아오라고.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던 나였기에 담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년의 남성이었던 담임은 권위적이고 참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평소에 진짜 싫어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 걱정되었던지 어르고 달래며 나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무단 조퇴가 찍히면 수시 원서를 쓸 때 불리하니까 다시 학교로 들어오라고 했다. 수시 추천서를 잘 써주려고 했는데, 네가 이러면 써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고, 담임에게 정중하게 써주시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의 나에게 대학을 가고 못 가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학교가 싫으니까, 학교를 벗어나고 싶다' 이 생각 한 가지뿐이었다. 학교를 벗어나는 내 발걸음은 상쾌했고,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세상에 뭔가 크게 한 방 날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통쾌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학교를 나와 봤자, 갈 곳은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게다가 학교에 있기 싫었을 뿐이지, 딱히 어디를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는 추적추적 오고, 갈 곳은 없고, 친구들은 다 학교에 있고, 나는 할 수 없이 그냥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언니들은 대학생이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턱시도를 멋지게 입은 나의 고양이와 반갑게 조우를 하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하루 종일 딩굴거렸다.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웹툰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실망했다. 멋지게 반항하고 싶었으나 고작 집에 와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다니; 너무나도 시시한 전개였다. 어쨌든 그날 하루는 잘 놀았고, 나는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갔다. 그리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무사히'라는 말은 좋은 단어일 수도 있으나, ‘무사(無事)’, 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야기에 있어서 치명적인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는 없다. 정말 재미없는 실험 소설이 아니고서는.
자퇴를 하고 싶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와, 교실을 탈출하고 싶었던 고3 때의 나는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싫어했던 학교에 제 발로 취업해 놓고, 4년 만에 퇴사를 한 나는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고등학생 때의 나는 뭔가 멋지고, 드라마틱하고, 흥분과 감동이 넘치는 삶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열아홉이라는 청춘의 나이에 아무런 삶의 가능성도 시험해보지 못하고, 수능 공부만 했던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가슴 뛰고 빛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내 인생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17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기가 막히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생이 이렇게 시시하고 지겹고, 힘들기만 할 거라면, 뭐 하러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만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소망만 남았다. 고등학생 때의 나와 달리, 이제는 적어도 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다.
사진: Gerd Altmann. 출처: Pixabay.
희극이든 비극이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어떤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그 사람만의 진실되고 간절한 욕망. 욕망은 사건을 일으키고, 장애물을 만나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진짜 나의 욕망을 과감하게 시도해보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이야기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속마음과 다른 말들만 내뱉으면서, 시시하고 힘들기만 한 삶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회 시스템의 쓸모 있는 부품이 되기 위해 내 젊음을 소진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진되는 동안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도 삶은 불안하기만 했다.
행복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영원히 손에 쥘 수 있는 트로피 같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삶 속에서는 행복조차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행복한 척, 능력 있는 척, 좋은 딸인척 하며 사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삶에 질려버렸고, 각본대로 연기를 수행하는 연기자가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각본가가 되기로 했다. 여전히 주변에선 말리는 분위기지만, 말리는 그들도 이런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내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없다. 그리고 사실, 꿈을 좇는 인생을 산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내가 꿈을 좇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일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진짜 실패자로 만들었고, 어른들이 말하던 안전한 길만 걸어온 나는 보시다시피 지금 최고로 불안전하다.
도대체 먹고살기만을 위해 살 것이라면, 뭐하러 인간으로 태어났겠나.(물론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학교에 남아있는 이상,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이 더욱 두려워질 테니까. 나는 이제야 처음으로 내 두 발로 선 기분이다. 공자는 서른이 되어야 비로소 ‘이립’할 수 있었고,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불혹’할 수 있었다. 나는 서른과 마흔의 중간지점에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로 결심했고, 주변의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몰라도,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 핑계 대지 않는, 진짜 나만의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다. 자유인 1일 차. 축하한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