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미래는 지독한 형벌이다

불안을 뒤집어 생각하기

by 가하

지난주 수요일, 학교에 퇴사 통보를 하고 딱 일주일이 지났다. 행정 절차가 2주 이상 걸려서 사실 그동안에 법적으로 퇴직한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작업을 하다가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교감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9월 10일 날짜로 의원면직 처리 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드디어, 학교와의 질긴 인연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행정실과 소통하며 퇴직금을 수령하 일이다.


4년 전, 모니터 앞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합격자 발표를 조회하던 당시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매우 다른 사람이어서, 아마도 과거의 나는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댈 것이다. 내가 합격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분명 험한 소리를 해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너무 미련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어쩜 그렇게도 끈질기게 꿈에서 도망쳤을까? 그러면서도 어쩜 그렇게 끈질기게 꿈의 언저리를 맴돌았을까? 물론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 점과, 스스로 용기 내지 못한 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타난 결과겠지. 과거의 나는 할 만큼 했고,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자.

그런데 사실 퇴사 통보를 하고나서 하루 이틀은 밤잠을 설쳤다. 지금이라도 다시 학교에 전화해서 물러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사였을 땐 경제적 보장이라도 있었지만, 글 쓰는 프리랜서로 살면, 꿈에도 쫓기고 생활비에도 쫓기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퇴사를 함으로써 무한한 자유를 얻었지만, 결과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도 따라왔다. 나는 불안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고, 일기를 적으며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아, 나는 지금 있지도 않은 부정적인 미래에 겁을 먹고 있구나. 하지만 미래는 허상이다. 미래가 그렇게 어두울 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가 있지? 그런 확신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학교에 전화해. 아직 공문은 처리되지 않았고, 학교엔 잠깐의 웃음거리가 되면 그뿐 인걸? 그리고 지금까지 네가 브런치에 내뱉은 말들은 다 거짓말이 되는 거야. 너는 사람들을 기만했고, 그리고 앞으로 넌 절대 글 쓰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나의 논리에 설득당했다. 그래, 다시 뒤돌아보지 말자.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가 막막하기만 하다면, 오늘의 나를 믿는 수밖에. 과거라는 이름의 지나간 현재는 바꿀 수 없고, 우리가 늘 그렇게 겁먹고 있는 미래는 사실 하루하루의 오늘을 쌓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두려워 해야할 것은 오늘의 나태함과 안일함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오늘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의 책’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한 번 써봤습니다. 불안함을 다독이는 부적으로 삼아야겠네요. :)


그리고 현재의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든든한 지원군 류가 말했다. 그리고 나를 믿는다고 했다. 따듯한 지지에 마음이 녹는다. 그래 맞아,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나는 변하지 않는 학교 시스템을 생각하며 숨 막혀하지 않았던가.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 구시대적 교육 시스템, 입시 위주 교육은 몇십 년째 여전하고, 국어교육은 파편화되어 학생들은 문학 작품 하나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 국어는 말과 글로 소통하는 과목인데, 학생들은 ‘화법과 작문’이란 교과서로 자신의 소통을 채점받는다. 이런 국어교육 따위, 정말 싫다고- 나는 그렇게 한탄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제야 나의 과거를 제대로 놓아주기로 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그녀이지만, 그녀의 몫은 여기까지로 남겨두고, 오늘의 나는 앞으로의 삶만 책임지자. 내 안의 불안을 고요히 응시하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자. 불안하다는 것은 바뀔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정해진 미래보다 지독한 형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을, 더 좋은 미래가 오고 있다는 축복의 징후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들 아무도 혼자는 아니다. 내 곁엔 언제나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류가 있고, 응원해주는 친구들, 지인들, 든든한 구독자분들이 있다. 그들의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며 나의 불안을 다스릴 것이다. 이것이, 진짜 나의 인생이니까. *It’s my life!




* 후회의 책 : 매트 헤이그의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나오는 용어.

* It’s my life : 본조비의 노래 제목.



*** 안녕하세요. 지난번 글에 많은 구독자님들이 댓글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본조비의 노래를 떠올려주신 독자님 덕분에 이 곡의 가사를 제대로 감상해 볼 수 있었네요. 이제 직선적인 하이웨이같은 삶으로 질주해 보겠습니다. 같이 한 번 감상해 주세요^^


Bon Jovi(본조비) - It's My Life 가사 한글 번역 자막 - YouTube (링크 누르면 이동. 한글 자막 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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