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은 때론 그 자체로 영화가 된다.

마왕에게 길을 묻다 1 : <나에게 쓰는 편지>

by 가하

한 사람의 인생은 때론 그 자체로 영화가 된다. 특히나 그 사람이 예술가이자 철학자이며 또, 이른 나이에 죽었다면, 그가 남긴 작품은 결말이 맺어진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철학자 (故) 신해철은 1999년 4월, '모노크롬'이란 앨범에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리드미컬한 포크록을 선보였다. 이 곡은 2년 후 ‘크래쉬’라는 밴드에 의해 좀 더 강렬한 메탈 곡으로 리메이크되고, 2001년 한 광고의 BGM이 되었다. 쇼커트 머리에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배우 임은경은 파란 천을 몸에 마구 휘두르며 스무 살 특유의 개성적이고 발랄한 몸짓을 연출해 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던 SK텔레콤의 ‘TTL’ 광고 덕분에, 학창 시절의 나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신해철의 강렬한 질문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자꾸만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무서운 목소리로 물어보는 크래쉬 덕분에, ‘진짜로 원하는 걸 알지 못하면 큰일 나나보다’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대가로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공무원을 퇴사를 해버린 나는, 신해철의 노래들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구구절절한 산문보다, 때로는 짧고 강렬한 시 한 줄, 가사 한 줄이 사람의 마음에 더 깊이 박혀 행동하게 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하면서 말이다.


‘서강대 철학과 중퇴’라는 이력에 걸맞게(?) 신해철의 가사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진솔하다.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의 진행자 ‘마왕’으로서, 그리고 MBC <100분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서도 그는 주옥같은 명언들을 많이 남겼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노랫말에 주목하고 싶다.


1991년 3월, 24살의 나이에 그는 두 번째 정규 앨범 ‘MySelf’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를 발표한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 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rap.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3) 신해철 (Shin Hae Chul) "2집 Myself (서곡)" - 나에게 쓰는 편지 - YouTube (음원 클릭)



이 가사 속 ‘화자’는 현재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을 만나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가 잠든 밤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본연의 자아는 “이젠 아냐.”라고 답한다.


‘이젠’이라는 말속엔, 전에는 두려워했었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결코 평범한 삶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걸어가고 있던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망 좋은 직장을 얻어, 배우자와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그리고 큰 집과 빠른 차, 사회적 지위 등을 갖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이런 화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하지만 화자는 말한다.


“어차피 우린 모두 죽게 돼있어. 그리고 너희가 추구하는 것들은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은 변하지 않고 결코 멀리 있지도 않아.”


그리고 화자는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거침없이 고백한다.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내 마음을 더 이상 남에게 감추지 않을 거야.”


자신의 의지와 굳은 마음을 천명하기에도 모자랄 판에, 화자는 자기 길을 걸어가다 힘들면 그냥 소리 내어 울 거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 같은 건 다 내려놓고, 오직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살아나가고 싶다는, 생에 대한 고백을 한 것이다.

노랫말 속의 화자는 이제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그리고 솔직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신해철은 자신의 길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해철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더 이상 자신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마도 이 노래 가사를 쓰며 그는 ‘진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9년 4월, 마왕 신해철은 앞서 언급했던 노래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를 발표한다.

(다음에 계속)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늘은 글 발행이 조금 늦었습니다. 그리고 늦어진 김에 이어지는 글은 더 천천히 여유롭게 쓰고 싶어 중간에 끊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를 살펴봤고, 다음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와 <민물장어의 꿈>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자주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원한 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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