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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Oct 28. 2021

오늘의 하루가 내일로 데려가 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좀 놀아봅시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게 하루이고, 내가 속한 학교나 직장, 어떤 집단이 제시하는 커리큘럼에 맞춰 하루를 꾸려 가다 보면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 가쁜 숨을 몰아 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지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기 싫은 일을 미루고 미루다 새벽에야 겨우 끝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반대로 내키지 않는 약속을 받아들여 휴일에 무거운 몸으로 약속 장소에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무언가를 배우고, 다양한 누군가를 만나고, 그렇게 열심히 살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사는 건 갈수록 지루했고 힘에 부치기만 했다. 내일이 오는 게 기대가 된다거나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는 그런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퇴사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퇴사라는 말로는 다 아우를 수 없는 인생살이의 대 전환을 이루기 전까지는 말이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육아 등으로 전개되는 인생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받아들여 누가누가 잘하나 식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이야 어차피 밑바닥 인생까지 내려간 사람들이니 목숨 걸고 한 판 게임을 벌여 456억 원이란 희망을 꿈꿀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아직 남은 인생의 기회들이 참 많은데 굳이 즐겁지도 않은 살벌한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우승자에겐 아무런 상금도 없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오직 노화와 죽음뿐이다.


 물론 인생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나를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으니 혼자 공중부양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다. 그리고 딱히 하는 일도 없다. 글을 쓰자, 소설을 쓰자, 책을 많이 읽자, 매일 같이 다짐해봐도 멀리 가지 못하고 나에게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다짐들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독촉하는 이가 없으니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다짐조차 잘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짐이란 말로 내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다져질 마음이 아니다. 고삐와 채찍으로 이리저리 조련시키려고 하다간, 마음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런 스스로를 지켜보며 나는 어쩌면 꿈을 이루고 싶어 퇴사를 한 게 아니라, 단지 예전처럼 살기 싫어 퇴사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어도,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당분간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소설을 쓰겠다고 퇴사를 했지만,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조차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리긴 싫었다. 글이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놀고 싶으면 놀고 싶은 대로,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안 써지는 글을 억지로 쓰려고 또 스트레스받으며 살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려고 힘들게 구한 시간이 아니다. 빈둥빈둥, 그렇게 보내는 하루가 누군가에겐(예전의 나에겐) 한심해 보이겠지만, 스스로를 비난하며 깎아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사람보다는 훨씬 건강하다는 것을 안다. 생각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 사이에 불화가 없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그 자연스러워진 기운으로 새로운 날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내 마음을 그냥 온전히 나에게 맡겨 버리는 거다. 수영을 할 때에도 물의 부력에 온전히 몸을 맡겨야 물에 뜰 수 있지 않던가? 물을 믿지 못하면 헤엄을 치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를 위대한 탐험가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어야 한다. '어찌어찌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에 꽁꽁 묶인 몸으로는 아무런 새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해야 하는 일에 짓눌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제야 현재를 붙잡으라는 카르페디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현재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방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 몸을 공중에 띄우고, 마음을 사로잡는 바람이 불어와 나를 충동질할 때까지 놀아보자. 나는 뭘 할 때 즐거운지, 뭘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지,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찾을 때까지 나를 그냥 내버려 두자. 이제는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어른들도 없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놀다 보면 다음 날이 기다려지는 기적이 생긴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런 하루하루를 쌓아나가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 단적인 증거로 동거인 와 나는 지금 '한 달 살기' 여행을 준비 중이다. 한 달 살기는 이전에 한 번도 계획해 본 적이 없었던 일이다. 적어도 지난주 월요일까지는 그랬다. 한 달 살기 여행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박 3일로 가을 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소파에 널브러져 평생 여행이나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생각 없이 인터넷에 '한 달 살기'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남해 군청에서 '남해 보물섬 한 달 살기'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접수 마감일에 공고문을 확인한 우리들은 3시간 만에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담당자로부터 선발되었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한 달간 자유 여행을 하며 SNS에 여행 후기 몇 개를 올리면 하루에 숙박비 5만 원, 인당 체험비 8만 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한 달을 꽉 채워 살고 오면 숙박비 150만 원과 체험비 16만 원을 지원받는 셈이었다. 하하. 하릴없이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신나게 여행 준비를 하고 있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도 직장에 다니는 이상은 잡을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물론 남해에서 한 달을 살고 온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달 살기는 시간 낭비이자 돈 낭비가 될 수도 있고,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나의 미래는 오리무중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여행을 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여행하며 글 쓰는 삶이 내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며 새로운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새로워진 '나'가 또 그다음의 하루를 책임져 주지 않겠는가? 소파에서 뒹굴 거리던 나태한 날의 '오늘'이, 여행 준비로 들떠 있는 오늘이란 '내일'을 가져다주었으니까. 남해에서 보내는 재밌는 하루하루가 더 멋진 내일로 나를 데려다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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