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목소리에 휘둘릴 때 벌어지는 일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1

by 가하

'학교'라는 단어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1954년, 남한에서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적어도 그럴 것이다. 수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얽혀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공간. 누군가에겐 장밋빛 황금기의 시절로, 누군가에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터널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학창 시절은, 특히나 인문계 고등학교 3년의 시절은 '압박과 소외의 시간'이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서 자신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였지만, 학교 일과는 오로지 '수능시험'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1교시로는 모자라 '아침 0교시'라는 기형적인 셈법으로 보충학습을 시키고, 7교시가 끝나면 다시 또 '방과 후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문제풀이 수업. '맞고 틀리고'의 싸움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저녁 급식을 먹고 행해지는 자율적이지 않은 '야간 자율학습'.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특별히 관리해주는 상위권 학생들은 밤 11시까지 '심화반'에 남아 추가적인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밤 12시. 보고 싶었던 티브이도 좀 보고 대충 씻고 잠자리에 들면 어느덧 새벽 1시가 된다. 내게 온전히 주어지는 시간은 수면시간 5시간 남짓이 전부였던 시절. 직장인으로 치면 3년 내내 매일매일 야근을 하며 살았던 셈이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주 5일제도 아니었고, 토요일에도 5시까지는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해야만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탐색할 시간도 주지 않고, 국가에서 선정한 권위 있는 지식을 머릿속에 주입하기에만 급급했던 그 당시의 학교교육에 나는 질려버렸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자퇴를 하고 싶었지만 '자퇴'라는 얘기를 꺼내는 순간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나를 '학교 부적응자'로 몰아갈게 너무 뻔했기 때문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나머지 2년을 묵묵히 버텼다.

드디어 수능시험날, 제2 외국어 시험까지 다 마치고 감독관이 수거해 갔던 핸드폰을 돌려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에 만세라도 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던지 나름 만족스런 점수를 얻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교'에 진학하였다.

학교를 그렇게도 싫어했던 내가, 교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엄마는 어느 날 나에게 사범대를 권했다. 이모가 교장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고 작은 언니 또한 사범대학교에 진학해 있었기 때문에 엄마 입장에서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물질적 자본은 당연히 없고 사회 경제적 자본, 즉 비빌 언덕도 전무했던 가난한 우리 집 형편에 공부 좀 하는 딸이 교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건 부모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PD가 꿈이었는데, 자발적으로 꿨던 이 첫 번째 꿈은 어떤 선생님 덕분에 산산조각이 났다. 물리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자기 조카가 OO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는데 지금 취직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방송계통은 연줄이 있어야 취직이 되는 것 같다는 그런 얘기를 툭 던지셨는데, 나는 그날 하루, 그 한 시간 수업에 선생님이 내뱉은 몇 마디의 말을 듣고 PD라는 꿈을 바로 접어버렸다. 우리 집 형편에는 꿈도 못 꿀 직업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철학과와 심리학과가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철학과는 직업과는 거리가 먼 학과로 보여서 바로 탈락이었고, 심리학과는 수련기간도 길고, 당시까지는 상담분야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직업의 문이 매우 좁아 보였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문학'이었는데, 학교에서 듣는 수업 중에 제일 공부같이 느껴지지 않고 재미있었던 과목은 '문학'이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를 고려했지만 '국문과는 굶는과'라는 전설처럼 떠도는 소문 때문에 또 단념하였다. 결국 나는 '흥미'와 '직업적 안정성'을 적절히 버무려서 '국어교사'라는 그럴싸한 결론을 최종적으로 낙점하게 되었다.


학교가 그렇게도 싫었던 나였지만, 선생님이 되면 다를 줄 알았다. 학교를 싫어지게 만드는 몇몇 선생님들과는 다른 선생님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교라는 시스템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바꾸어 나가고 싶었다. 학생들과 문학이 주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학생들의 꿈과 성장을 지지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솔직한 욕심을 더하면 선생님들은 여유시간도 많고, 흔히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이니 밥줄 끊길 걱정 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엄청난 판단 착오였다. '나의 적성을 몰랐던 대가'이자, '근거 없이 떠도는 말들을 아무런 검증 없이 믿었던 나의 어리석음의 대가'로, 나는 교직 4년 차인 지금 퇴사를 앞두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힘들어서'이다. 학생들을 평가해서 성적으로 줄 세워야 하는 것도 힘들고, 수업연구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몰아치는 행정 업무도 힘들고, 교실에서 무기력하게 자고 있는 학생들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외면하는 것도 힘들었다. 담임반 학생의 힘든 가정환경을 알면서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하게 했다.

사실 힘든 학생을 걱정하다가도 퇴근한 이후에는 내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든다는 사실에 더 자책감이 들었다. 교사 또한 사람이고 단순한 직업인일 뿐이기 때문에, 학생을 나의 삶으로 끌어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스승 콤플렉스'에 걸려 혼자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학교를 도망치고 싶었다.


사실 이 모든 힘든 점의 근본 원인은 50분 단위로 촘촘히 짜인 기계적인 시간표와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인사를 들여다보고 돌봐주기엔 학급당 학생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2019년도 시도교육청별 초·중·고 학급당 학생수 현황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수가 OECD 평균인 21명이 넘는 학교는 초등학교가 3044곳(48.6%), 중학교는 2149곳(66.5%), 고등학교는 1798곳(76.3%)에 달한다.

초중고 12년간의 공교육의 최종 목표가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사실, 즉 '입시 위주' 교육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펼치는 과정에 성적이 좋지 않아 낙오되는 학생들, 교우 관계로 소외되는 학생들, 가정사로 인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돌보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교사 1명당 학생 30명. 1대 30의 시간 속에서 인간적인 만남은 불가능했다. 산술적으로 따져도 교사 1명이 수업시간 50분 내에 학생 30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은 한 명당 1분 40초 정도에 불과하다. 단, 수업 진도를 전혀 나가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말이다.


나는 이제 개인적으로 학교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 교직 생활 4년을 거치며 서서히 찾아온 생각이 아니다. 매해 연말마다 내년에는 다를 거야, 내가 좀 더 경력이 쌓이면 바꿔볼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생각하며 매해 버텼지만, 변하지 않는 기본적인 시스템 앞에서 나는 언제나 무기력하고 무능한 교사에 불과했다.

어쨌든 나는 일반인들이 확대 재생산하는 근거 없는 목소리들에 휩쓸려 '교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약 4년 간의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교직'은 생각처럼 그렇게 꿀 빠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이고, 시켜준다고 해도 절대로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엄청난 노동 강도의 서비스직이라는 것이다. 내가 교사가 되고 보니 왜 교사들이 그렇게 권위적이고 방어적이고 수업 준비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학교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과 소외, 권위주의적 요소들,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시스템 등에 대해 내부고발자의 입장에서 치열하게 써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너무 당연시 여기던 '학교'라는 시스템의 멍든 속사정을 속속들이 진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이 글은 내가 왜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장황한 리포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