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말대로 안전한 길만 걸어왔는데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3
'고등학교 국어교사'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내려놓으려는 지금,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나는 대체 무엇을 잘못해서 이 지경까지 되었나.
발령 첫 해, 출퇴근을 하면서 나는 매일 '달리는 차가 나를 좀 치어주었으면'하고 바랐다. 나를 망치는 '나쁜 관계'에 빠져들기도 했다. 피곤해도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이것들 모두 자해와도 같은 '자기 파괴적 행동'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자살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파국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사가 되기까지 엄청난 것들을 희생시켰다. 첫 번째는 20대의 시간, 두 번째는 부모님의 노동력, 세 번째는 친구 및 지인들과의 관계, 네 번째는 나 자신의 건강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포기해가며 8년 만에 어렵게 얻은 직장이 나의 적성과 맞지 않을뿐더러, 구조적인 한계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숨을 잘 쉴 수가 없었고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야만 했다.
내가 국어교사가 되기까지는 총 8년이 걸렸다. 사범대에 진학하기 위한 수능 재수 1년, 국어과목으로 교직이수를 하기 위한 편입 공부 1년, 국문과 3학년으로 학사 편입 후 졸업하기까지 또 2년, 시험 자격을 얻어 임용고사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4년.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도합 8년이란 시간을 수험생으로 지냈던 것이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공부만 하다 보니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많이 멀어지게 되었고, 부모님은 나날이 쇠약해져 갔다. 서른이 다 되어서도 부모님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고,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실력에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서른, 단지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고 마침내 합격의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합격 통보'를 받은 순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서른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서른이 되었다. 그제야 스스로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친척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부모님의 어깨가 펴지는 것을 보면 정말 통쾌했다. 이제는 '기초 생활 수급자'라는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뉴스에서 '청년 실업'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나는 겨우 살아남았음에 안도했다.
기대를 가득 안고 시작한 교직 생활, 그러나 학교라는 곳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드셌고, 신규 교사에게 주어진 업무량은 살인적이었다. 무엇보다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교사의 시간을 잡아먹는 주된 업무가 '수업'이나 '생활지도'가 아니라 '행정업무'라는 점이다.
학생들과 의미 있는 수업을 만들어보겠다고 교사가 된 내게, 학교는 뜬금없는 행정 업무들을 요구했다. 학급 단합대회를 하려고 해도 기안문을 올려야 했고, 예산을 쓰려면 지출 품의를 올려야 했다. 국가에서는 각종 통계자료를 보고하라고 독촉했고, 행정실에서는 각 교실의 안전 상태를 점검해서 파일을 보내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게다가 한 교무실에는 10명 내외의 선생님이 상주했는데, 선배 교사들은 본인들이 심심해서 나누는 대화에 신규인 나를 자꾸 끼워주려고 했다. 덕분에 학교 일과 중에는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고, 나는 매일 퇴근 후에 새벽 1~2시까지 울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그제야 왜 학교 수업이 그렇게 재미없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만족스러울 만큼 수업 준비를 하려면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6시에 퇴근하고 나서도 2~3 시간은 꼬박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그나마 지식의 범위가 확고하게 잡혀있고, 일주일에 2~3개의 진도만 준비하면 되는 다른 교과목과 달리, '국어'는 주요 과목이라 5일 내내 진도를 나가야 했고, 교과서에 따라 작품이나 글이 달라 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번 수업 준비를 새로 해야 했다. 나는 정말이지 왜 하필 '국어'과목을 택했을까 매일매일 후회했다.(ㅠㅠ) 한 번 수업 준비를 해서 평생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너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행정 업무 다음으로는 '담임 업무'가 또 내 발목을 잡았다. 각종 전달사항을 전달하고 때가 되면 상담을 하고, 청소만 잘 시키면 되는 게 담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통제'해야 하는 게 담임의 큰 업무였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조퇴'를 시켜달라고 난리부르스를 췄다. 내가 두 시간 연속으로 수업이 있는데, 그 짧은 10분의 쉬는 시간에 학생이 조퇴시켜달라고 찾아오면 대략 난감이었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동의를 구하고, 조퇴증을 작성하여 사인을 하고, 수거한 핸드폰을 찾아서 돌려줘야 했다. 나는 더욱이 '학생을 의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왔던 터라 학생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해주며 찾아오는 족족 조퇴를 시켜줬는데, 사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픈 연기를 잘한다.
경제적 약자로 살아오며 '권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내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며 '교사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은 순간, 아이들은 나를 만만하게 보고 통제받지 않으려고 했다. 지각을 하고, 청소에서 도망을 가고, 학교 교칙을 어기면 부과되는 '성찰 시간'에도 불참하려고 했다.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마음에 화가 많이 쌓여 있었고, 업무와 수업 준비 때문에 잠은 항상 부족했다. 학급 내에 가정 폭력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는(*4편 '스승의 날의 악몽' 참고) 학교 조직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거 다 떠나서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직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사색하고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좋아하며 무슨 일을 해도 꼼꼼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는 사람(INFP유형)인데, 내게 있어 학교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이었다. 쉬는 시간 10분 안에 그렇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일 잘하는 선배들은 뭐든지 '대충대충 빨리빨리' 해치웠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에 '의미부여'를 했다간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1,000여 명 정도 되는 교사와 학생들이 50분-10분 단위로 '땡'하고 치는 종소리에 맞춰 이런저런 충돌과 소음을 만들어냈다.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지나가던 관리자가 헤드폰을 빼라고 눈치를 줬다.
나는 불과 몇 달 일하지 않고도 이 직장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두겠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 없었다. 30년 넘게 나를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고, 다른 가족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없었다. 나를 믿고 지지해주던 남자 친구와의 미래를 망칠 수도 없었다. 대학교 6년을 다니며 쌓아놓은 학자금 대출 3천만 원은 직장을 버리지 못하는 실질적인 족쇄가 되었다. 뒷바라지 해준 가족과 남자 친구에 대한 미안함,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 경제적인 걱정 등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밀려왔고, 나는 결국 모든 걸 다 내려놔야만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대체 이유가 뭐지 싶었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여자는 교사가 최고다'라는 말을 믿고 어른들이 알려주는 안전한 길만을 좇아서 걸어온 길의 끝이 고작 '절망'이라니. 안전하다는 길이 오히려 나를 옥죄고, 성격을 파탄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어른으로 만들어 냈다. 그동안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책임감으로 나를 몰아세운 것이 화근이었다. 일이 힘들 때마다 괜히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가 늘어났다. 나를 짓누르는 책임을 다 내려놓고 가족들 몰래 잠적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한 학급의 '담임'을 맡은 이상 학사일정은 다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그러자 겨울 방학이 왔고, 도저히 그만두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해 어영부영 다시 새 학기를 맞았다. 학자금 대출이라도 다 갚은 다음에 그만두자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2년 차가 되고 3년 차가 되고 4년 차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수업 준비쯤 대충 해도' 지구가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고, 학교 일은 열심히 할수록 힘들고, 대충대충 하면 쉽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일은 그냥 다른 부서와 다른 선생님에게 떠넘기고, 학생과는 벽을 치고 권위로 적당히 내리누르고, 학교에 어떤 일이 터져도 그냥 적당히 조용히 덮어버리면 무사하게 정년까지 버틸 수 있는 직장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학자금 대출을 조금씩 갚아나가며, 방학 때는 나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주말에는 수업 준비를 하지 않고 휴일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좀 더 경력이 차면 '담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호봉은 점점 올라가 월급도 두둑해질 것이고, '부장'이 되면 할 일이 너무나 많아지니 적당히 꾀를 부려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나이롱 교사'로 늙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분명한 꿈이 있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부터 교사가 되려고 했던 것도 교사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편견, 내가 좋아하는 '문학'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사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고 학교에서 다루는 정답 있는 문학은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아무리 해도 잠재워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부조리한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학교 업무를 대충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시간 관리법'등의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체력엔 한계가 있어서 이렇게까지 빡빡한 삶을 언제까지 병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이야 미혼이라 그나마 가능하다고 쳐도, 결혼을 해서 육아를 하며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쓴다고? 내게 그런 슈퍼파워는 없었다. 점점 안 좋아지는 건강도 나를 각성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인생은 유한하다. 나는 드디어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더 이상 '내가 아닌 삶' 속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학교에서는 단 하루도 마음속 깊이 행복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 주고받는 웃음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말고는 학교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주변의 선배 교사나 관리자 중에 본받고 싶어 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조직에서 버텨봤자 저런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래가 더 암담해졌다.
나는 그제야 이 '안전해 보이는 트랙'에서 내려오기를 결정했다. 왜 달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의 환호성만 바라며 달리는 경주마보다는,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이나 뜯어먹는 야생마가 되고 싶었다. 뜯을 풀이 없어 굶어 죽을지언정, 사는 동안에는 자유롭고 싶었다.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트랙 안의 삶을 '포기'한 것에 더 가깝긴 하지만, 뭐가 중요하겠나. 나는 애초부터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부상당한 경주마가 되어 깨닫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리는, 용기 없는 어른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길에, 인생의 열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일상인들의 말이 진리는 아니니까, 주변인들의 말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찾아가야만 인생이 헛되지 않는다. 특별하게 살고 싶다면 특별하게 행동해야 한다. 또 굳이 특별한 결과를 내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목소리를 믿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놀라운 인생의 내공을 얻게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남 핑계 대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볼 테다.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