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성적은 정해져 있다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6

by 가하

정말 공부를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에만 목적을 두는 학생이 아닌 이상,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

예체능적 재능이나 특출난 장기가 있어서 굳이 공부가 아니어도 먹고살 길이 있는 친구들이 아닌 이상,

누구나 대학에 가려고 하고, 누구나 상위권 대학을 꿈꾼다.


좋은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오로지 ‘수능 시험’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너무나 많은 과업에 시달리고 있다.

77%에 달하는 수시 전형을 위해서는 내신 등급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 년 내내 '지필평가' 점수를 관리해야 한다. 지식보다는 학생들의 실제 수행 능력을 평가하겠다며 '수행평가'의 비중을 늘려 하나의 과목에도 3~4가지의 수행평가가 실시된다. 성적만 관리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교생활기록부’가 다양한 활동들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학생회 활동, 멘토링 활동, 창체 동아리, 자율동아리, 다양한 독서 활동, 봉사활동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요즘 학생들이다. 오죽하면 어떤 활동을 시킬 때 "이거 생활기록부에 써주세요?"라고 물어보는 학생이 있겠나.



아이들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므로, 나는 정말 모든 학생들이 1등급의 성적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잔인하게도 학생의 성적을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세부적으로 나눈다. 1등급은 상위 4%, 2등급은 상위 11%, 3등급은 상위 23%. 3등급 이상이 되면 사실 서울권 대학은 포기해야 한다.


학교에서 내가 제일 안타까워하는 그룹은 4, 5, 6등급의 학생들이다. 하위 23%에 해당하는 7, 8, 9등급 학생은 공부 자체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 자기 성적이 낮게 나와도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 순간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있어도 자기 스스로 공부에 의의를 두지 않으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물론 이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므로 이것 또한 큰 문제이다.) 그러나 4, 5, 6등급 학생들은 다르다. 공부를 포기한 것이 아니고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는데도 결과는 늘 비슷하다. 더 머리가 좋고, 더 예습이 잘 되어있고, 공부하는 습관이 더 잘 형성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언제나 밀린다. 이를테면 출발선이 다른 것이다. '수능'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라면 어떻게든 고3 가을까지 '꾸준하게 열심히'해서 상위권을 따라잡으면 되지만, 2개월 단위로 반복되는 '내신'이라는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학생의 '현재 기량'에 따라 성적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1 때의 성적이 큰 변동 없이 2, 3 학년까지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긴, 내가 고등학생 때도 '고1 첫 모의고사 점수가 너의 수능 점수이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는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등급에 정말 큰 차이가 없다. 그렇게 보면 수능이든 내신이든, 학생들의 성적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특별한 계기로 인해 철저한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에서 '항상 하던 대로' 하게 된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학교 교육은 학생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어느 한순간, 자신의 구태의연한 알을 깨뜨리고,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가는 학생은 전교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는 학생들의 이러한 무력감과 관성을 깨트리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았다. 교육 심리학에서 배운 '동기 이론'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기존의 성적에서 1등급을 올리면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만 모두 그때뿐이었다. 교수법 또한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강의식으로도 했다가 모둠학습으로도 했다가, 영상도 보여줬다가 그림도 그리게 했다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강의식 수업을 해도, 모둠 학습을 해도 원래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아갔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요즘, 교실에서 무기력한 친구들은 집에서도 여전히 무기력했고, 교실에서 적극적인 친구들은 온라인 수업도 여전히 잘 따라왔다.


심지어는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대충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배워도,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배워도, 상위권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성적을 잘 받아갔다. (이것은 혹시 사교육의 힘?)




학생들과 상담을 할 때 나는 '평소 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라'며 너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가 1등급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누군가가 1등급이 되기 위해서 누군가는 2등급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성적 우수자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는 성적 부진아가 돼야만 한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상대평가'가 자행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나는 언제까지나 무기력한 교사에 불과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학생들의 수행 결과에 따라 기계적으로 성적을 줄 뿐이다. 학생들은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 의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세에 도움이 되는 대학 간판을 따내기 위해 공부한다. 평가 방식이 어떻게 바뀌든, 교수법을 어떻게 바꾸든, 결국엔 입시 위주의 교육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는 순간, 니 옆의 친구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꼴이 된다.

1, 2, 3등급 아이들의 배움도 가치가 있고 4, 5, 6등급 아이들의 배움도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성적을 올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각자 다르게 지니고 있는 꿈의 씨앗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만 해주면 그뿐이다. 2022학년도부터 '교교 학점제'를 도입하여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과목을 제공해주겠다고 난리지만, 교사에 의한 '평가'가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겉껍질을 아무리 바꿔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학교 교육에 진정한 '배움'은 없고 성적에 따른 '경쟁'만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성적을 주는 입장이 되고보니 뻐져리게 깨닫는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눈물 나는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자들이 요즘 임용고사를 통과한 '교사'들이 아닌가? 수험생의 상위 5%만 합격하는 시험. 합격자 평균 4년 이상 공부해야 하는 시험.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온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가르칠 수 있을까? 정정당당한 경쟁의 결과라면 능력에 따라 학생들을 소고기 등급 나누듯 '등급'으로 구별 지어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출세를 위한 '가짜 공부'가 학생들의 인성을 망치고 있다. 지식과 권력이 빛나는 소시오패스들을, 우리는 이미 뉴스에서 충분히 보고 있다. 지식과 마음이 따로 노는 공부. 한국의 기득권층은 계속해서 그런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며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계층을 대물림하고 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에 성공했지만, 이제는 경쟁뿐인 '가짜 공부'에 질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다. 무한 경쟁 시스템에 기여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퇴사를 통해 우선 나부터가 '나다운 삶'을 살아보고자 한다. 그래야 한참 나중에라도, 학생들에게 해 줄 말이 생길 것 같다. '돈벌이'보다는 '꿈'을 좇아가야 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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