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의 악몽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4
수험생일 때는 교사가 되면 당연히 '담임교사'가 되겠지 하며 많은 것들을 상상하곤 했다. 나는 절대로 학생들을 편애하지 않을 것이라든지, 학생을 의심부터 하지 않을 것이라든지, 다른 학생과 비교하지 않을 것이라든지... 초중고 12년의 학교생활을 거치며 '좋은 교사'의 모습보다는 말 그대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모습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인지, 주로 '~하지 않겠다'의 다짐들이 많긴 했지만, 나는 꼭 그런 교사가 될거라고 다짐했다. 가끔은 학급 운영과 관련된 낭만적인 상상들도 하곤 했다. 조회 시간에는 기분 좋게 노래 한곡 씩 들으며 학생들과 하루를 시작하겠다든지, 아침에 일찍 오는 친구들과 독서서클을 열겠다든지, 나처럼 가정환경이 힘든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겠다든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그런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받아 든 첫 담임반의 학생 명단. 문과 여학생 총 42명이었다. 초임으로 발령받은 학교는 신도시여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편이었다. 42명, 가지각색의 삶이 좁디좁은 '네모난 교실'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출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실전에 투입된 나는 업무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그날그날 쏟아지는 업무들에 혼줄을 빼앗겨 형식적인 담임 노릇을 하기에도 숨 가쁜 3,4월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5월 15일. 교직생활의 첫 번째 스승의 날을 맞이 했지만, 그 날은 내게 '감동스러운 날' 보다는 '악몽 같은 날'로 기억에 남아있다.
스승의 날 찾아온 악몽 같은 기억의 첫 번째 손님은 '아동 보호 시설'에서 통학하는 친구였다. 정말 착하고, 겸손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지혜로운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불운은 부모님이었다. 친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아버지는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친어머니도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어른들이 학생을 시설로 피신시켜놓았다. 그런 어머니는 딸을 위해 남편을 내치기는커녕, 남편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딸을 설득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학생 정보는 외부인에게 함부로 노출하면 안 되는데, 행정실 직원의 실수로 자기 딸이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아낸 어머니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고, 제발 우리 딸을 내놓으라며 학교를 휘저어 놓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학생을 곧 찾아낼 것 같다는 위기감을 감지한 시설 선생님의 선견지명으로 학생은 이미 다른 위탁 위탁시설로 피신한 상태였고, 나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어머니는 갈수록 포악해지며 나를 몰아세웠다.
스승의 날에 찾아온 악몽, 두 번째 손님은 부모님에게 학대를 당하던 친구였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말로 타이르기보다는 무조건 '체벌'을 했고, 말이 체벌이지 다 큰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고, 싸대기를 날리고 몽둥이로 여기저기를 때리며 막말을 일삼는 부모였다. 경제적으로도 빈곤하여 학생이 집에 오면 그네들이 하는 부업일을 아이에게도 시켰는데, 그러면서도 항상 왜 공부를 더 잘하지 못하느냐고 혼을 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학생은 수학여행 하루 전날 가출을 하여 나에게 전화를 했다. 하루만 재워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마침 본가에 가 있던 터라 학생을 재워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우리 반 학생이 그 친구를 재워주기로 했고 무사히 수학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담임이 되어 첫 수학여행을 인솔하는 것도 긴장되었는데, 나는 수학여행 3박 4일 내내 아이의 학부모와 전화로 실랑이를 하고, 아이와 상담을 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하느라 진이 다 빠져있었다. 잠도 부족하고 마음도 피폐해진 수학여행이 어찌어찌 끝나고, 나는 관리자에게 응당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기대했지만 교감선생님은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했으니, 월요일에 학교로 경찰이 올 때까지만 학생을 나보고 데리고 있으라고 했다. 지금 같으면 나부터 살자며 어떻게든 반항했겠지만, 이 지시가 불합리한 것이라는 상황 파악조차 안 되던 신규 시절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아이를 데리고 방 한 칸짜리 자취방으로 퇴근을 했다. 내가 담임이니까, 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수학여행 동안 쌓인 피로를 편히 풀지도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해있는 아이를 달래가며, 맛있는 것을 사줘가며, 남자 친구랑 놀고 오라고 용돈을 줘가며 겨우 2박을 재웠다. 제자와의 불편한 동침. 나는 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학년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요청했지만, 부장님 또한 학생을 떠맡기에는 부담스러웠는지 하루만 좀 더 참아보라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6박 7일이 지나고, 드디어 월요일에 출근을 하여 학교에 경찰이 왔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관리자들에게 보고하러 다니는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지고, 그러던 와중에 첫 번째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딸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 이 친구는 '장기 무단결석' 학생이었는데, 이 학생 또한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집 밖으로 나돌고 있었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같이 어울려 노는 친구들과 술과 담배를 즐겼다. 학생은 '자퇴'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지만 어머니는 어떻게든 고등학교는 졸업시키고 싶어 담임에게 계속 아이를 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미 신임을 잃은 상태였고, 자기 자식도 컨트롤을 못 하는데 이제 갓 부임한 초보 담임교사가 어떻게 학생을 설득할 수 있겠나. 아이의 마음에 최대한 공감해 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불이익이 될 수 있는지 어른들의 계산법을 들이밀며 설명해도, 아이의 굳게 닫힌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그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는 이상, 그 아이의 삶에 어떠한 개입도 다 무의미한 것이었다. 내가 학생을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긴다고 해서 그 아이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가정 안의 문제는 가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 학생들도 이미 그 한계를 알기에, 교사에게 그렇게 큰 기대감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학교를 자퇴하고 싶은 학생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 '학업 중단 숙려제'라는 것을 신청할 수 있는데, 수업은 듣지 않고 학교 상담사와 주 2회 정도 상담을 하면서 '자퇴'에 대한 심사숙고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것을 사용하면 일 년에 7주까지 수업을 쉴 수 있는데, 이 학생은 숙려 기간 중 꼭 받아야 하는 상담 의무도 지키지 않아 결국에는 자퇴를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관리자들은 그 학생이 학교에 적(籍)을 두고 사고를 치고 다닐까 봐 빨리 자퇴서를 받아오라고 재촉했다. 학부모는 잡아달라고 난리고, 학교에선 빨리 호적에서 파내라고 난리였다.
어쨌든 그러니까 요약해보자면, 두 번째 학생과 3박 4일을 지내고 출근한 월요일, 첫 번째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학교를 헤집어 놓았고, 그날 원래 세 번째 학생이 자퇴서를 쓰러 오기로 한 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일정이 바뀌어 학생은 다른 날에 자퇴서를 쓰고 갔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날을 견뎠는지 아찔하기만 하다. 부임한 첫 해, 그것도 5월 중순에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선배 교사들은 10년 치 겪을 사건을 첫 해에 다 겪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학생들을 반편성하여 윗 학년으로 진급시킬 때면 이미 반 구성만 보아도 '힘든 반'이 될지 '꿀 빠는 반'이 될지 알 수 있었고, 힘든 반은 꼭 신규 교사나 다른 학교에서 전근 오는 전입 교사에게 떠넘기는 관행이 있었다.
아니, 경험도 없는 신규에게 꼭 그런 학급을 맡겨야만 했나요?!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선배 교사들도, 본인이 살려면 그렇게 남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고생을,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대신 떠맡을 직장인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더욱 관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내가 살겠다고 저경력 교사에게 힘든 반을 떠넘기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신 시한폭탄을 떠안을 자비심도 없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지점은 내가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에도 시간표대로 짜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평균 수업 시수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까지 포함하여 주당 18시간. 그러니까 하루에 3~4시간의 수업이 있다는 것인데 하루 근로 시간이 8시간이라고 했을 때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공강 시간은 불과 2~3시간이다. 공강이라고 해서 여유 있게 쉴 수 있다거나,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메신저로는 수도 없이 많은 행정일과 잡무들이 쏟아지고, 교무실은 수시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기 때문에 조용히 수업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나는 정말이지 그날 화장실 한 번 갈 틈 없이 경찰과 학부모와 관리자들과 씨름을 하다가도 수업 종이 잔인하게 땡 하고 울리면 교실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 많은 감정 소모를 추스를 여유도 없이 학생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교사가 에너지가 없는데 수업이 잘 될 리가 없다. 교사가 마음속에 걱정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에너지를 주겠는가. 모든 감정 노동자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교사는 특히나 그 감정을 사용하여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점에서, 교사의 정신 건강이 좋지 못하면 교육의 질 또한 좋을 수가 없다. 마음의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학생의 모든 요구가 다 귀찮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단지 담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해야만 할까? 현행 체제로라면 담임반에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그것은 오로지 담임만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관리자가 있어도 결국엔 담임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학교 근처에는 여학생을 24시간 보호할 수 있는 긴급 시설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됐다. 지금도 가끔 관리자가 그때 교육청에 전화 한 통 해서 그런 시설이 있는지 알아봐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부장님에게 sos를 요청했을 때 부장님이 그 학생을 하루만 맡아줬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담임 혼자 해결하는 구조가 아니라,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학년 전체, 부장, 관리자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역할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대로 힘을 얻어 사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 이렇게 힘든 담임 업무가 대부분 저경력 교사에게만 주어진다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비합리적인 부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교육 경력이 오래되어 학생을 잘 다루고 경험도 많은 고경력 교사가 오히려 담임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신규 교사들은 수업도 제대로 해 본 적 없으므로 일단 '교과 교사'부터 시작해서 수업에 숙달이 되고, 1년 치 업무 파악이 되면 그제야 담임을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학교는 연공서열이 적용되는 관료조직이다. 내가 젊었을 때 고생했으니, 나이 들어서는 우대받고 싶어 지는 것이다.
선배 교사들은 '담임이 교사의 꽃이고, 특히 고3 담임이 담임의 꽃'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담임'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지 않고 정말 '교사의 꽃'이라고 불릴 만 하다면 그 '꽃', 정말이지 선배 교사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내가 이 조직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나 또한 고경력자의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될 텐데, 나는 정말이지 내가 욕하던 그런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조직. 나는 그런 조직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냥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